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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산책
‘소코꾼지’
2022. 07. 12 by 울산제일일보
어느 날 새벽, 이불을 걷고 막 일어나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OO 친구란 낯익은 글자다. 꼭두새벽부터 웬일이냐고 물으니 소코뚜레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농민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수소문해서 하나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집을 내놓은 지 오래됐지만 하도 팔리지 않아서 부적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선뜻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대답한 것이 찝찝했다. 아침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소 키우는 농부 몇 분한테 전화로 부탁해도 하나같이 반문만 할 뿐이었다. “요새 소코꾼지가 어디 있느냐?”면서…. 난감해서 머리가 어지러운 와중에 문득 옛날 기억이 생각났다.

경운기가 보급되기 전 내가 어렸을 때, 농사짓는 농가마다 암소 한 마리 정도는 키웠다. 우리 집도 일하는 암소를 키웠는데 송아지가 태어나 여섯 달쯤 지났을 무렵 코뚜레를 끼우기로 했다. 굳이 아버지가 책력을 보고 잡으셨다는 ‘좋은 날’을 골랐다. 그날 아버지는 아침부터 새끼손가락 굵기의 생박달나무를 베어와 껍질을 벗기고 소죽 솥에 푹 삶아서 부드럽게 한 다음 타원형 코뚜레를 만드셨다. 소가 움직이지 못하게 밧줄로 단단히 묶으신 아버지는 잘 익은 보리막걸리를 소주 대병에 넣고 소머리를 위로 치켜들고는 소 입속에 콸콸 부어 억지로 먹이셨다. 두어 시간 지나 소가 알딸딸해졌을 때 미리 만들어 둔 코뚜레에 들기름을 칠하고는 왼손으로 소의 코끝을 꽉 잡아당기면서 오른손에 쥔 코뚜레를 코의 엷은 살갗에 순식간에 끼우셨다. 코에서 피가 흐르는 소는 아프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들어가 박힌 코뚜레 위력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보리막걸리의 알딸딸한 효과 덕분인지 금세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코뚜레를 끼울 때는 내가 항상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그럴 때마다 코뚜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만아. 이 나무 코꾼지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아무리 힘센 소라도 꼼짝 못하게 한다 아이가. 코꾼지에는 다른 힘도 들어있지. 사람들은 코꾼지가 집안을 편하게 하고, 복을 잡아두고, 악한 기운을 내쫓는다고 믿는 기지. 힘센 소의 기를 이 코꾼지에 딱 가다나야(가둬놔야) 효험이 있다고 보는 기라. 우리 마루 위 기둥에 보면 가늘고 누런 꼬꾼지가 있제? 그거는 내가 키운 소 중에 제일 힘없고 약한 소의 것인 기라. 저거를 보면 내 가슴이 마이 아푸다.” 아버지는 소 코에 끼워둔 코뚜레가 오래되어 낡으면 새것으로 갈아주셨다. 혹 집안 보물인 귀한 소의 코에 상처라도 날까 봐 염려하신 것이다. 교체한 낡은 것은 버리지 않고 마루 위 기둥에 걸어두고는 소코뚜레의 영험한 효험을 기대하셨다.

코뚜레를 구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지 보름 후 저녁, 한 농민 모임에 참석했다. 소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가 소코뚜레를 하나 구해달라고 말했다. 모두 ‘요새 그런 게 어딨냐?’는 듯 나를 쳐다본다. 소를 키우는 한 농부는 “코꾼지를 끼운 소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또 다른 젊은 농부는 “인터넷에 들어가면 천지빼까리”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꼭 소 코에 한 번이라도 끼웠던 것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밤새 내리던 비가 새벽에 그쳤다. 시끄러운 뱁새 떼 소리에 휴대폰 소리를 못 들을 뻔했다. 소를 많이 키우는 농민의 전화였다. 누구한테 들었는지 내가 소코뚜레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한 것이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 걸어둔 소코뚜레가 응답한 덕분인지 소코뚜레는 용케도 구할 수 있었다. 구할 동안은 스트레스가 많았다. 하지만 소를 지극히 사랑하신 그리운 아버지의 옛 모습이 떠올라 더없이 행복했다.



박경만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울산광역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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