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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산책
잊혀진 아기 울음
2022. 07. 05 by 울산제일일보

“제가 면사무소에 아-(아이) 출생신고하러 갔는데 담당 공무원이 신고서를 한참 보더라고요. 양옆을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공무원에게 들고 가서 물어보고는 다시 제자리에 앉아 어디로 전화하면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나에게 하나 묻고 적고, 또 하나 묻고 적고를 계속했지요. 제 뒤에 기다리던 민원인들이 시간을 너무 많이 끈다고 항의하니 담당자는 얼굴이 벌개집디다. 사무소가 소란스러워지자 뒤쪽에 앉아 있던 계장이 다가와 담당자와 몇 마디 나누더니 ‘우리 면에 출생신고가 들어온 지 너무 오래돼 담당이 잘 몰라서 그런 모양이지요. 죄송합니다.’ 그러더라고요. 항의하던 사람들이 어이가 없는지 서로 보면서 그냥 웃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면에 아-가 안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할 줄 아는 공무원이 없었던 기라요.”

며칠 전 이웃 면에 사는 40을 갓 넘긴 젊은 농부의 딸 돌잔치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다. 돌잔치에는 농업경영인 동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열댓 명 중에 대부분이 5~60대였고, 70대도 있었지만 30대는 아예 없었다. 그런데 그 잔치에 내 큰아들과 동갑인 27살의 농부 지망생이 있었다. 20대의 등장에 동료들은 아들이나 동생이라도 얻은 듯 흐뭇해했다. 돌 맞이 아기를 보며 덕담을 나누고 나자, 모두의 관심은 27살 젊은이에게 쏠렸다. 서로 그 주변에 앉으려고 했고 먼저 말을 붙이려고 했다. 어디에 사는지, 무슨 농사를 짓는지, 부모 형제는 어떤지, 애인은 있는지와 같은 말을 앞다퉈 하느라 입들이 바빴다. 농사 경험을 이야기하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농심을 모두 전하고 싶어서 안달이었고,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우리가 둘러앉은 돌잔치 자리의 주인공은 아기가 아니라 그 젊은이로 착각할 정도였다.

술은 분위기가 마신다고 했던가? 젊은이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취기가 무르익을 무렵 아기 아빠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출생신고를 하고 한 일주일 지나이 여기저기서 아- 선물이 억수로 들어왔다 아인교? 우리 면에 오랜만에 아-가 태어나까네 면사무소에서 연락했던 기지요. 농협, 주민자치위원회, 부녀회, 노인회에서 아- 분유부터 기저귀, 옷, 노리개까지 한 보따리씩 가져왔데요. 옆 동네 이장님들도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몇 분 왔고요. 출생신고 받아준 공무원도 면장님과 같이 왔던데 ‘우리 면에 출생신고 들어온 지 1년이 다 돼서 출생신고를 한 번도 안 해봐서 그렇습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기쁩디다.’라고 말하데요. 나중에 알았는데 각종 단체에 아- 태어났다고 연락한 사람이 바로 그 공무원이었던 기라요.”

내가 살고 있는 농촌에서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 지 오래다. 아니 곧 60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가 동네에서 제일 젊다. 매주 토·일요일이면 동네 경로당에서 우리를 부른다. 아내가 조금 일찍 가서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것을 도우면 모두가 ‘명천이 엄마’라며 말을 붙이고 가까이 다가가 어울리고 싶어 한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들은 아무리 주어도 손해가 안 나고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아내는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와 집집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나 또한 아내를 통해 그분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아기 울음소리, 젊은이들의 활기가 그립고 아쉬운 요즈음의 농촌이다. 이제는 아기 울음소리가 종종 들리고, 젊은 농부 지망생이 많이 들어와 사람 사는 맛도 나고 사람 향기가 가득한 농촌이 되었으면 한다.

박경만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울산광역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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