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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뒤늦게 이어령 선생을 기리다
2022. 05. 02 by 울산제일일보

두 달여 전에 이어령 선생이 돌아가셨다. 많은 분들에게 귀감이 된 분이었지만 필자에게도 큰 울림을 준 영혼의 스승이었다. 필자가 중고교를 다닐 때만 해도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를 알게 된 동기도 참으로 우연스러웠다.

생전에 늘 호기롭고 남의 부탁이라면 잘 거절하지 못하시던 필자의 부친 덕분이었다. 아는 분들이 찾아와 뭘 사달라고 부탁하면 웬만하면 다 들어주셨다. 그러다 보니 집안 곳곳에 각종 월간지부터 전집류, 백과사전 등 여러 종류의 책들이 그득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책들은 오롯이 필자의 몫이 되었다.

그중에 이어령 선생의 작품도 몇 점 섞여 있었다. 오래되어서 제목도 내용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한국과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 선생 특유의 천재성을 과시하며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했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때, 어떤 수업시간에 ‘3분 스피치’라는 형식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발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의 그 글을 마치 필자가 창작이라도 한 듯이 꾸며서 발표하여 선생님과 학우들의 감탄을 자아낸 일이 있었다. 그 후로 필자는 이어령 선생의 팬이 되었다.

선생의 전성기 시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바인지라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필자는 선생의 초년과 중년의 지성이 넘쳤던 시절보다는 말년의 영성(靈性)이 충만했던 시절의 선생을 더 존경한다. 선생의 말년의 말씀과 글의 주된 주제는 ‘죽음’이었다. 이런 경향은 사랑하던 따님을 먼저 천국으로 보낸 후 본격화되었고, 선생이 ‘암’ 판정을 받은 후 더욱 두드러졌다. (선생의 따님은 목사였다.)

선생은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았다. 오히려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민족종교부터 불교와 기독교 등 모든 종교에 정통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었다. 선생이 말년에 쓴 한 글에는 ‘이모탈한(immortal, 불멸의) 존재는 하나님뿐이고,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어. 이게 모탈인(mortal, 죽을 수밖에 없는) 거지.’ 이렇게 보면 기독교적인 사고이지만(실제로 선생은 2007년에 기독교에 귀의했고, 많은 논란을 불렀다.) 말년에 그의 병상을 지켜본 이들은 한결같이 선생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죽음의 증상을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았다.’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불가에서의 수행법인 사마타(고요)를 통한 위빠사나(긍극적인 지혜)를 터득하는 것과 일치한다.

선생의 수많은 저서 중에 거의 마지막 저서쯤에 해당하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한 문장을 보자.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이는 얼핏 보기에 원래의 품인 어머니 곁, 즉 절대자인 하나님 곁으로 돌아간다는 기독교적인 생사관을 담은 글로 보인다. 하지만. 불가에서 말하는 ‘이쪽 등(燈)에서 저쪽 등으로 불(火)을 옮겨 붙일 때, 새로운 불꽃이 피어나듯, 삶도 죽음을 통해 새롭게 피어나는 것이다.’라는 생사관과도 일맥상통한다.

기독교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부활절’이 얼마 전에 지났고, 불교의 최대 명절인 ‘부처님 오신 날’이 며칠 안 남았다. 선생이 가신 후 여러 자료를 훑어보다 보니, 문득 시기적으로도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봤다. 선생께서 천국에서 잠시 쉬시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하시기를 빌어본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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