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울산제일일보
뒤로가기
전재영 칼럼
오랜만에 천고마비의 계절을 맛보다
2021. 11. 14 by 울산제일일보

요즘같이 가을이 깊어가고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천고마비(天高馬肥)’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몇몇 식자(識者)층을 제외하고는 이 표현이 잘못 쓰이고 와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원전은 후한(後漢) 때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편찬한 ‘한서(漢書)’의 ‘조충국전(趙充國傳)’에 나오는, “가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찔 때 (오랑캐가) 반드시 침략할 것입니다(秋高馬肥 變必起矣).”라는 글귀다.

원전의 뜻이야 어떻든 간에 이번 가을처럼 ‘추고마비(秋高馬肥)’인지 ‘천고마비(天高馬肥)’인지가 가슴에 확 와 닿은 것이 실로 몇 해 만인지 모르겠다. 필자의 기억엔 십여 년 전부터 9월만 되면 몰려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감상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이는 해가 갈수록 더 심해졌었다. 앞으로 살아생전에 예전과 같은 푸른 가을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번 가을은 십여 년 전의 가을, 혹은 그 이상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보았던 검푸른 하늘을 거의 매일 보고 있고, 아무리 호흡해도 달기만 한 공기를 거의 매일 접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은 예년과 달리 손에 꼽을 정도다. 울산보다 미세먼지 피해가 훨씬 심한 수도권의 경우, 이런 다이내믹한 변화가 훨씬 뚜렷해 아는 지인은 저녁마다 처연할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이번 계절의 변화가 신기해서 뉴스를 검색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현 정부의 공이 크다는 뉴스가 제일 상단에 올라와 있다. 2017년 대선 공약으로 ‘미세먼지 저감 종합대책’을 세우고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를 출범시켜 미세먼지 관리대책과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한 데 따른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이에 힘입어서일까, 정부는 최근에 ‘2050 탄소중립’를 선언했다.

이 뉴스의 일부는 공감이 가지만 일부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이번 가을, 대기가 유난히 맑은 것은 정부의 노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보다는 중국-호주 간 분쟁으로 인한 중국 내 석탄 수급 부족과 이로 인한 석탄 소비 감소가 더 큰 요인일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고 중국 내 석탄 소비가 다시 증가하면, 미세먼지가 예전과 같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뿐 아니라 주변국 모두가 ‘탄소중립’에 올인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시대의 명제(命題)다.

유럽에서는 최근의 기상이변에 따른 각종 재해로 ‘탄소중립’을 국가적 사명으로 실행하는 나라가 급증하고 있다. 예전에 마을 한복판에 있던 노르망디 지역의 교회가 해수면 상승과 해안침식으로 바닷가가 되었고, 올해 백여 년 만의 폭우로 독일 여러 마을의 홍수피해가 부각되면서 탄소중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와중에 ‘2050 탄소중립’이 나왔으니 많은 중견, 중소업체에서는 곡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당장 어렵다고 투덜댈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 울산에 소재하는 에너지 공기업의 CEO와 중소기업 대표들 간에 상생을 도모하는 간담회의가 있었다. 예견되었듯이 대다수 중소기업 대표들은 석탄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에너지원과 관련된 특화기술이 사장될까 봐 조바심을 내며 대책을 촉구하는 모양새였다. 이에 대한 에너지 공기업 CEO의 답변은 의외였으나 명확했다. 내용인즉, 시대의 흐름으로 보아 석탄과 같은 화석원료 시대는 끝나가고 있으니, 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문수산을 올랐다. 일부러 인적이 드문 호젓한 산길을 찾아 마스크도 벗고 폐부까지 청량하게 해주는 시원한 공기를 맘껏 마셨다. 발갛게 단풍이 든 나뭇잎 사이로 흩어지는 맑은 가을 햇살도 맘껏 누렸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다시 못 올 수도 있는 이 소중한 순간들을 부지런히 담아야겠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 대표이사·공학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