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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칼럼
달이 떠야, 술맛이 난다
2021. 08. 10 by 울산제일일보

얼마 전에 친구들 카톡방에 이백(李白)의 시 ‘장진주(將進酒)’를 올렸더니 술 좋아하는 친구 하나가 이백의 다른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으로 화답을 한다. 잠깐 이 시를 감상해보자.

“꽃 사이에 놓인 술 한 단지, 아는 사람 없이 홀로 마신다. / 잔을 들어 달을 청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이 되네. / 달은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르는구나. /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니 즐겁기가 모름지기 봄이 된 듯한데. / 내가 노래하니 달이 배회하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가 어지럽게 오가는구나. (하략)”

교교한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다 흥에 겨워 어우렁더우렁 춤을 추는 이백의 모습이 선하다. 이 시를 접하고 보니 이백의 다른 시 ‘대주문월(對酒問月)’이 떠오른다.

“맑은 하늘 저 달은 언제부터 있었나 / 내 지금 잔 멈추고 물어보노라 / 사람이 달을 잡아둘 순 없어도 / 달은 항상 사람을 따라 다니네 / (중략) / 내가 노래하며 잔을 들 때에 / 달빛이여 오래도록 잔을 비춰라.”

이 두 시의 공통점은 ‘달(月)과 술(酒)’이다. 달이 뜨고 달그림자가 져야 술맛도 난다. 강릉의 경포대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한다. 첫 번째 달은 하늘에 뜬 달이고, 두 번째 달은 동해 바다에 비친 달이고, 세 번째 달은 경포호에 비친 달이며, 네 번째 달은 술잔 위에 뜬 달, 마지막 다섯 번째 달은 님의 눈동자에 뜬 달이라고 한다. 참으로 풍류과 해학이 넘치는 멘트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질세라, 울산의 한 시인이 노래한다. 울산은 함월루(含月樓)에서 달이 떠서 은월루(隱月樓)로 진다고. 다행히 함월루는 필자의 회사 지척에 있어서 저녁에 한 번 올라가 봤다. 경포대 같은 고아(古雅)한 맛은 아니지만 함월루의 달은 울산과 태화강, 그리고 저 멀리 동해까지 비추는 스케일이 훨씬 큰 달이다. 마치 천 개의 강을 비추는 달이랄까.(月印千江)

수도권은 지난달 초부터, 가까운 부산은 이번 주부터 저녁 6시 이후에는 모든 주점과 식당이 두 명 이하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 모두가 코로나19의 확산 때문에 내려진 불가피한 조치이다. 그러나 이런 제한이 주점과 식당을 운영하는 상인들뿐 아니라, 매일 저녁 꼭 한 잔씩 해야 하는 주당(酒黨)들 혹은 어쩔 수 없이 모임을 가져야 하는 이들에겐 가혹할 수밖에 없다.

궁하면 통한다고, 인간의 지혜와 적응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지난달 중순, 수도권 같은 동네에 사는 친한 지인의 회갑 파티를 했다. 늘 동네에서 만나던 지인들 네 명이 만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후 4시에 파티를 시작했다. 저녁 여섯 시까지 두 시간 동안 무려 3차를 했고, 다들 만취해서 주점을 나선 순간, 아뿔싸! 아직도 한낮이고 기온도 30도가 넘는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어찌어찌해서 집에 왔는데도, 달은커녕 해만 쨍쨍해서 몸을 숨길 데가 없었다. 자고로 술이란 달이 떴을 때 시작하고 끝내야 한다. 그래야 달을 한가득 품을 수 있고, 취했을 때는 달 뒤로 숨을 수 있다.

그 뜨겁던 여름도 엊그제 입추(立秋)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더욱 반가운 것은 이젠 오후 여섯 시만 되어도 제법 저녁 기분이 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음주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코로나19 퇴치는 요원하다. 이럴 때 혼자 마시는 혼술은 월하독작(月下獨酌)을 추천한다. 실내조명을 최대한 낮추고 창가에 앉아 달을 보며 달과 대화하며 달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추천한다. 4인 이하는 함월루나 태화강변같이 달이 휘영청 보이는 야외에서 시(詩)와 담(談)을 논하며 달과 노니는 걸 추천한다. 5인 이상의 회식은? 아쉽지만 코로나19가 완화될 때까지 꾹 참기로 하자. 대신 그동안 회식할 때 할 건배사를 하나씩 준비해 두자. 필자가 준비한 건, “장진주(將進酒)~, 배막정(杯莫停)!”이다. 풀이하면 “내가 술을 권하노니~, 잔이 멈추지 않도록~!”쯤 될 것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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