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아야 할 추억
먹고 살아야 할 추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6.0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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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고막을 자극하는 알람소리에 자동 작동하는 로봇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잠이 아쉬운 듯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늘어뜨린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기도하고 애써 잠을 깨우려 손도 탈탈~털어본다. 그리곤 창 너머로 보이는 이미 밝아진 세상을 눈으로, 깊은 호흡으로 느껴본다.

아침이면 반드시 두 가지 일을 한다. 밥솥에다 특별히 촉촉한 아침밥을 주문하는 일이 그 하나다. 또 하나는 아이를 깨우는 일이다. 그런데 아이 깨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조심스레 잠자는 아이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의 곁에 살며시 눕는다. 아이의 머리께로 팔을 살짝 뻗으면 눈을 감은 아이는 본능적으로 제 가슴 깊숙하게 얼굴을 파묻는다. 맨살에 닿은 아이의 볼과 피부의 촉감이 품안에 쏙 들어와 앉은 아이의 여린 몸이 부드럽고, 사랑스럽다. 눈썹을 한 올 한 올 쓸어주기도 하고 미간사이의 콧대도 세워준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가락빗’으로 빗어도 주고, 손끝에 힘을 실어 지압도 해준다.

아이가 씨익 웃는다. 바로 이때가 아이를 깨울 시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거의 매일 아이와 추억 쌓기를 한다.

최근 우연히 한 음악 카페를 알게 됐다. 7080세대라면 익숙해 할 음악다방 같은 곳이다. 하지만 음악다방에 대한 추억이 없는 필자에겐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다.

얼마 전 지인 두 사람과 그 곳을 찾았다. 노래 한 곡, 한 곡, 곡목을 적을 때마다 그 시절의 사연을 지금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지인들의 얼굴은 언뜻 보아도 벌써 추억의 옛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흘러나오는 신청곡에 연신 ‘어머 어머’를 연발하는 모습이 그랬다. 우린 품앗이라도 하듯 서로의 귀를 쫑긋 세우며 노래제목을 알아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노래 제목도 아스라해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고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지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철부지 여고생이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흘러나오고 그 시대를 맛깔스레 설명하는 디제이의 목소리는 마치 요술램프에서 흘러나오는 마법의 연기처럼 우리를 묘하게 감싸고돌았다.

그렇게 추억 여행을 마친 우리는 영화제목 맞추기 깜짝 이벤트 당첨 선물로 LP판을 하나씩 받아들고 음악다방에서 일어섰다. 주인장의 속보이는 배려 덕분에 우리는 먼 훗날 이 시간을 기념할 소중한 추억거리를 선물로 받은 셈이었다.

흔히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치고 힘든 삶을 향해 늘어놓는 푸념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말이 있다. ‘왕년에’다. 한때나마 잘 나갔다고 자위할 때 쓰는 용어다. 하지만 ‘왕년에’ 로 시작되는 말은 그 꼬리가 땅으로 맥없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뭔가 선명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짠한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말이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과거 속엔 ’왕년‘도 있고 추억도 있고 기억도 있다. 얼핏 들으면 비슷한 것 같지만 딱히 비슷하지 않는 이유는 그 사용하는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싫었던 것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 그것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겨울 추위에 얼고 터서 빨갛게 부어오른 볼과 얼기설기 묶어놓은 분수머리 시절의 기억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으면 추억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먹고 살아야 할 것이 추억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차곡차곡 많은 추억을 만들며 살아야 한다.

단, 누군가와 함께. <오양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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