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장 이음길 종가 복원 지름길
역사현장 이음길 종가 복원 지름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5.2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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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의 역사탐방로
한삼건교수의도시이야기
▲ 일본 쵸후거리.

올해 들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창조경제’가 사회적 이슈를 넘어 국가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 ‘창조’가 붙은 용어 중에는 ‘창조도시’도 있다. 울산에서는 시와 울산발전연구원이 포럼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도시재생’도 이미 수년전부터 LH공사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들 모두 도시경쟁력을 높여서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다만 앞의 것이 ‘도시디자인’에 초점을 맞췄다면, 후자는 아무래도 낙후된 기성시가지를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중심이 놓여 있는 정도가 차이일 것이다.

▲ 중구 반구동 신라무역항 유적

도시디자인과 유사한 용어 가운데는 ‘도시경관(都市景觀)’이라는 용어가 있다. 도시디자인은 디자인한다는, 즉 만드는 주체와 만든다는 행위를 중시하는 개념이고, 도시경관은 만드는 대상물, 즉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도시와 도시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활동을 중시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둘 다 물리적인 시설물을 기능적이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쓰임새’에 해당하는 기능은 불편한가 아닌가로 그 질을 파악하기 쉬운데, 아름다운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따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름답다는 것은 사람들 마다 판단 기준이 달라서 객관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의 주관적 판단으로 아름다운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도시디자인이나 경관정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도시경관을 정비하는 디자인 활동은 대상이 도시이기 때문에 공공적인 시설물이나 장소는 물론이고 개인의 사적 공간이나 시설물 정비까지도 ‘공공선(公共善)’을 실현하는데 기준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행정주도로 도시디자인이 이루어지고 경관정비가 추진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도시나 건축관련 규제를 보면 이전에는 그 기준이 누가 보아도 오해할 수 없도록 돼 있었다. 즉, 기존의 건축조례나 도시계획조례는 ‘용적율’이나 ‘건폐율’ 또는 몇 층이나 몇 미터 이하로 하라는 것처럼 명확한 ‘수치’에 의해서 각종 개발행위를 규제해 왔다. 하지만 도시디자인과 경관관리는 그렇지가 못하다 보니 공공기관이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무언가 결과를 내놓아도 만족하는 의견보다 부정적인 의견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시민은 행정을 불신하게 되고, 행정활동은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

▲ 중구 반구동 신라무역항 유적

이런 문제를 먼저 경험한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 삼아 살펴보자. 일본은 교토나 요코하마처럼 먼저 도시경관정비에 눈뜬 지방자치단체는 1969년대 말부터 시작했고, 1980년대에 접어들면 전국의 모든 시읍면(市町村)이 경관정비를 중심으로 행정을 펼치게 된다. 주로 경관조례를 만들거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마을 가로 정비, 지역의 역사유산 정비, 지방도시 중심지 재생 등의 사업을 시작했다. 1970년 말부터는 정부의 활동도 눈에 띄는데, 모델도시 정비사업이 대표적이다. 주로 심볼로드(symbol road)사업 같은 도로정비는 물론, 공원, 하수도, 주거환경, 주택건설, 도시재개발, 하천정비 등 거의 모든 개발 사업이 망라 돼 있었다. 이런 사업을 추진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은 공해를 비롯한 도시환경 악화, 자연환경 및 역사유산 파괴, 지방도시 침체 등을 들 수 있다.

필자는 1988년부터 1995년 초까지 일본에서 유학과 취업을 통해서 직접, 간접적으로 이런 활동을 경험했다. 연구실 안에서는 주로 각 지역의 역사적 유산을 활용한 지역활성화나 도시디자인 방안을 연구했고, 수업이나 세미나, 과외활동 등을 통해서는 다양한 마을만들기와 도시디자인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정기적인 세미나로는 ‘보존수경연구회(保存修景硏究會)’와 ‘교토CDL(Kyoto city design league)’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연구자 간의 교류와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들 모두 현지조사와 활동을 통해서 도시경관을 개선하고 디자인을 하는 모임이다.

▲ 중구 외솔 기념관.
특히, 보존수경연구회는 지도교수인 니시카와 코지(西川幸治)교수님이 이끌고 있었는데, 연구실 OB 멤버 중에는 당시 교토시청 경관과장과 문화청 직원 등 공무원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학자들과 대등하게 공부하고 연구해서 학술지에 함께 논문도 실었다. 그들을 통해서 일본의 도시디자인 행정이 질 높은 보행환경 정비와 도심 녹지 확충, 그리고 양호한 경관의 보존과 육성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필자가 공부했던 연구실은 이 가운데 일본의 ‘양호한 경관의 보존과 육성’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런데, 연구실 이름에 ‘수경(修景)’이라는 낯선 용어가 보이는데, 그 뜻은 ‘경관을 닦는다’ 즉, ‘경관을 디자인한다’는 의미이다. 말 그대로 도심의 양호한 풍경이나 장소, 또는 문화재와 같은 역사적인 장소나 시설을 찾아내고 새 생명을 부여(재생)해서 디자인한다는 뜻이 된다.

사실, 도시에는 ‘완성’이라는 개념이 없다.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 도시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현재로부터 우리가 그려내는 미래에 이르기까지 지속성을 염두에 둔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설익은 방법론이나 현재의 편협한 가치관만으로 도시를 개발한다면 예기치 못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 예는 이미 울산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각종 개발행위가 결국은 도시를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히 각종 개발에 임해서 행정 당국이 우선 겸허한 태도를 견지해야 하고 과욕을 버려야 한다. 도시디자인 측면에서는 그 도시가 간직한 자연과 그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이 남긴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다른 도시와 차별화 된 개성을 이끌어 내고, 가장 뛰어난 디자인 모티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을 돌려서 울산광역시 중구의 보행로 정비방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중구는 적어도 지난 천년 이상 울산의 중심이자 종갓집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역사유산이 남아 전하고, 산등성이 하나, 개천 물길 하나에도 이야기가 스며들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구동의 신라시대 무역항 유적, 병영성, 태화루, 향교, 고려토성, 동헌 등일 것이다. 이들을 보행로로 묶는 계획은 이미 제안된 것만 해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와 별도로 필자는 중구 지역의 개성을 살리고 역사성을 계승하기 위한 방안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반구동 신라무역항 유적을 살리기 위해서 동천강을 따라 내려오는 4차선 도로인 ‘외솔큰길’을 동천교 하부의 지하램프에서 지금처럼 지상으로 올라오지 말고 약사천 합류지점과 한라그랜드아파트, 공사 중인 e편한세상 아파트를 모두 통과한 다음 지상으로 올라오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반구동 신라항구 유적의 성격이나마 다음 세대에 계승하는 것은 물론 도로 소음이 원천 차단돼 거주환경이 획기적으로 좋아지고, 도로 상부의 여유 공간에는 옛 울산항 관련 전시시설이나 옥외 시설물을 두어서 강변공원처럼 활용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태화강-학성공원(왜성)-학성제2공원(충의사, 구강서원)-계비고개길-복산공원-함월 및 무지공원(백양사), 또는 혁신도시(종가로)-태화산-태화루-태화강대공원으로 이어지는 도심 외곽 역사탐방로정비이다. 여기서는 관건이 태화강에서 학성공원7길과 10길(혹은 화합로 상공)을 지나는 공중보행로와 학성공원에서 충의사로 넘어가는 학성로와 계변로 위에 공중보행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두 곳의 공원을 지금처럼 도로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공중으로 연결하면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물론 도심의 볼거리이자 이야기꺼리가 돼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자동차를 위한 고가도로나 지하도로가 있듯이 사람을 위한 고가 통행로를 만들자는 의미이다. 자동차와 건물로 막힌 길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도심 명소에 새 생명을 불어 넣고, 사람들의 보행권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세 번째는 동천강변 산책로-산전샘-병영성 동문지-병영성 일주, 또는 외솔생가와 기념관-병영초등학교-서문지-병영성길-통일신라시대저수지유적-혁신도시로 이어지는 산책로 정비를 제안한다. 이외에 구도심 내부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시민이 찾는 읍성둘레길에 대한 디자인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중구재개발과 맞물린 이 지역은 좁은 골목길 하나만 가꾸고 파묻혀져서 사라져 가고 있는 토박이 주민들의 이야기만 발굴해도 엄청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다. 중구의 경우 이처럼 읍성길과 그 외곽의 역사탐방로가 정비되면 종갓집의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서 주민의 자긍심과 향토애도 고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정비된 중구 둘레길과 성안옛길, 입화산 참살이 숲길같은 레저용 길과도 상호보완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것은 물론이다.

<한삼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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