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저울질
가을날의 저울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0.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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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가운데 뿌리내린 가로수들이 제법 알록달록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합니다.

요사이 각종 문화행사를 많이 해서 눈과 귀가 즐거운 시절인터라 하루를 마무리 짓는 시간이 오면 슬그머니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집을 나섭니다. 제법 쌀쌀함이 묻어있는 그 시간의 공원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앉아계신 노인들이 많습니다. 잠을 청하려 누었으나 오래된 화가의 헤진 그림 속 사람들처럼 탁하게 자리 잡은 노인들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결국 뒤척거리고 맙니다.

여고시절 여느 날과 같은 국어시간. 또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으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고 그 방법으로 실천궁행의 삶을 제시하는 내용의 수업으로 기억됩니다. 그 수업시간이 제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까지도 지대합니다.

그 이후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제 삶의 방향등이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의미는 푸념처럼 늘어놓는 것이 아닌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그저 ‘잘~살아야지’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란 거죠. 스스로에게 던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에 미래와 희망, 목적과 목표까지도 고스란하게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응당 실천궁행의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심경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지나쳐 또 나를 일으켜 세우는 철학적 논제가 생긴 것입니다.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입니다.

평소 저는 노인에 대한 관심이 아이돌에 환호하는 요즘 아이들만큼 깊습니다. 그렇지만 노인들을 보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제 삶의 화두였고 외려 노인의 모습이 곧 나의 미래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분명 노인은 나의 미래의 모습을 평가하는 도구이자 모델이었습니다. 호젓하게 강변을 거닐고 있는 노부부를 보면 아~ 저렇게 나이 들어야겠구나 싶다가 수발을 받아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폐지를 차곡차곡 줍는 노인을 보면 노후대책을 생각하다가도 그나마 포기하지 않는 삶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 어떨 때는 뭉클하기도 합니다.

노인 한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한 채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삶을 귀하게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좋은 계절이어서 더욱 귀한 주말에 흔히들 노망이 났다는 표현으로 익숙한 치매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치매는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하고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병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증상입니다. 그와 더불어 한편으로는 가슴이 미어져 수습이 되지 않는 격한 감정과 일생의 삶이 사라져가는 절절한 안타까움을 동반하는 끔찍하리만큼 무서운,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치매는 시간과 장소와 같은 지남력을 포함한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점점 상실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해 사랑하는 자녀와 배우자를 기억에서 찾아내지 못하며 급기야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아챌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만듭니다.

밥을 먹었던 것을 잊어버려 먹고 또 먹고, 드라마 속 치매환자의 단골 레퍼토리처럼 ‘며느리 년이 밥을 안줘~’라는 식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것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해 밥을 먹기가 어렵고 어떻게 걸었는지 방법조차 잊어버려 걸을 수도 없는, 마치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아기 같은 결국 늙은 아기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모임에 가면 얼굴 한두 군데 정도는 의학의 힘을 빌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히려 기미와 잡티 있는 얼굴이 예의 없는 얼굴이 될 정도로 성형과 미용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이 들기 싫다는 것이겠지요. 저는 뭉툭한 손톱과 두터워 갈라진 손바닥 지문고랑마다 새까맣게 낀 땟자국, 거북이 등짝처럼 거칠어 갈라진 손등에서 노년의 아름다움을 찾아냅니다. 세월이 감을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훈장입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더라도 삶의 중간 과정이 화려했더라도 죽음 앞에선 누구라도 공평할 뿐입니다. 내 삶을 송두리째 뿌리 뽑히듯 티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매 순간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듯합니다. 잘 죽어야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죽음 맞이하려면 그가 내 사랑하는 이임을 끝까지 잊지 않도록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여야겠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울질이 시작되는 참 훌륭한 가을입니다.

<오양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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