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의 세가지 맛
언양의 세가지 맛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0.1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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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에는 3미(味)가 있다. 언양 사람들이 즐기는 세 가지 맛이다. 언양불고기가 첫째요 미나리를 살짝 데쳐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미나리 강회가 두번째이고 상북 못안(池內里)의 쌀로 지은 흰 밥이 있어야 언양의 세가지 맛이 완성된다. 여기에 무시장국과 나박김치가 곁들여져 담백하고 정갈한 밥상을 갖추면 금상첨화다. 추사선생의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을 떠올릴 만하다. 때마침 언양 한우불고기축제가 시작되었다. 억새도 보고 언양 3미도 맛볼 겸 이번 주는 언양에 가야한다.

울산의 한우 불고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양념에 재운 한우를 석쇠에 구워 먹는 언양식과 그냥 숯불에 고기를 얹어 왕소금을 뿌려 구워먹는 봉계식이다. 언양불고기는 1960년대부터 유명했고 봉계는 1980년대 이후에 자리 잡았다. 둘 다 지나친 양념 맛이 없어서 좋다. 순수한 사람들은 양념 범벅을 싫어한다. 주물럭이나 전골과 다르고 일본식 야끼니꾸나 LA갈비와도 별개이다.

불고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구이문화의 상징이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도 좋아한다. 고구려의 맥적(貊炙)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맥’이 중국 동북지방의 부여나 고구려란 뜻이고 ‘적’은 숯불이나 돌판에 구운 고기를 말하는 것이니 맥적이 오늘날의 불고기나 너비아니의 원조가 되는 셈이다.

삼국을 지나 고려 때는 불교의 영향으로 고기를 많이 즐기지 않았지만 몽고의 지배를 받은 고려 말에 ‘설야멱’(雪夜覓)이라는 구이요리가 되살아났다. 설야멱은 몽골 사람들과 회교도가 많이 들어와 살던 개성에서 유행했는데 ‘눈 내리는 밤에 찾는 고기’란 뜻이다. 중국 송나라 태조가 눈 오는 밤에 진나라를 찾았을 때 숯불 위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는데서 유래했다. 이후 불고기는 원나라에 널리 퍼져 지금까지도 중국요리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음식을 통한 한류의 전파는 오래 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음식으로까지 발전되었으니 너비아니가 그것이다. 너비아니는 고기를 저며 너붓너붓하게 썰어 부드럽게 한 뒤 구운 것을 말한다. 언양불고기가 얇게 썰어 최소한의 양념으로 고기 자체의 맛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너비아니의 계보라 할 수 있다.

언양불고기는 언제부터 유명했을까? 전문가들은 1950년대 이전의 문헌에 불고기란 낱말이 보이지 않아 불고기란 단어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언양불고기가 일제시대 때부터 유명했다는 설은 무리인 것 같다. 1960년대 고속도로 공사 함바설이 설득력이 있다. 태화강 상류지역으로 깨끗한 물이 풍부하고 드넓은 초지까지 갖춘 언양 땅에 한우를 많이 길렀고 우시장이 만들어지고 도축장과 푸줏간도 성행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그 때 먹었던 소고기 국밥이나 불고기가 전국으로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한우 불고기라고 다 같은 불고기가 아니다. 언양불고기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한두 마리 정도 새끼를 낳은 3~4년생 암소를 도축한다. 육질이 부드럽고 기름기가 적어 최고의 맛이라고 한다. 언양 사람들이 ‘잘 익었다’고 표현하는 연령대다. 또 고기 맛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양념대신 생고기나 소금구이를 한다.

맛있는 음식처럼 시문(詩文) 등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며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우리는 인구회자(人口膾炙)한다고 비유한다. 맹자(孟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육회와 구운 고기가 예부터 인기가 있었다는 증거다.

이 가을의 ‘어느 멋진 날’, 언양에 가고 싶다. 영남알프스의 억새밭에서 평화와 여유를 만끽하고 작괘천변의 불고기 축제를 즐기자. 가족을 위해 언양 3미를 맛보고 언양을 노래하고 싶다. 눈솔 정인섭 선생이 남긴 가곡 물방아가 제격이다.

“깨끗한 언양물이 미나리깡을 지나서/물방아를 돌린다.//팽이같이 도는 방아 몇 해나 돌았던고/세월도 흐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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