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돈내기 임금 그리고 그 기적
한국인과 돈내기 임금 그리고 그 기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20 2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여년 전의 일이다. 중소 시멘트 제조회사에서 한 치 물러설 수 없는 노사분쟁이 터졌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어렵다면서 3년째 임금을 동결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정말로 어려운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의 임금인상은 10%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버티고 있었으나 회사는 임금을 단 1%라도 올리는 날에는 바로 문을 닫게 된다고 맞서고 있었다. 담당 근로감독관이었던 나는 양측의 주장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바로 성과급제도였다.

노사가 협력하여 생산성 향상, 품질 개선, 원가절감을 이루고 그 이익의 일부를 근로자들이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성과가 더 나는 만큼 근로자들이 이익을 얻지만 회사는 그것으로 손해 볼 일이 없다. 그러나 이 제안은 쉽게 모두로부터 거절되었다. 노동조합은 성과가 나더라도 회사가 계산을 속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회사 또한 노조가 성과가 나지 않았음에도 성과계산을 속였다며 억지를 부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양측을 설득함으로써 성과 상여금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신은 여전하여 성과 계산을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하기로 하였으니 그것은 생산되는 시멘트 포대 수를 헤아리는 것이었다. 원가절감, 품질개선 분야의 성과 계산은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런데 성과 상여금제도를 시작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부서별로 서로 잘하려는 경쟁관계가 형성되면서, 결근·지각·조퇴가 사라졌다. 종전에는 교대 근무자가 뒤 근무자가 오지 않아도 기계를 세워두고 퇴근했는데 이제는 밤 세워서 일하기도 했다. 기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노조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회사와 협력하다 보니 비로소 믿게 되었다면서 시멘트 포대 수를 헤아리는 것을 전적으로 회사에 일임했다. 뿐만 아니었다. 수년 전 시멘트가 잘 팔리지 않았을 때 회사가 전 사원에게 판매활동을 요구하였는데, 생산직 근로자들이 거세게 반발하여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변화도 있었다. 생산실적은 자꾸 올라가고 그러나 팔리지 않은 시멘트는 재고로 쌓여감에 따라 회사는 한숨만 쉬고 있을 때에 노조가 스스로 시멘트 판매에 나섰다. 그리하여 여섯 달 뒤인 연말에 근로자들은 40%의 성과 상여금을 받았는데, 400%의 상여금을 받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 이것은 투쟁으로 빼앗은 것도 아니고 사장의 호의로 얻은 것도 아니다. 스스로 열심히 일하여 일구어낸 성과의 정당한 보수인 것이다.

시멘트 회사에서 소중한 경험을 얻었던 그 다음 해에 포스코가 극심한 어려움에 닥쳤다. 노동조합이 지나치게 과격했던 활동으로 무너지면서 노사관계가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노사관계 안정 및 사기 진작의 방안으로 성과 상여금제도의 도입을 건의하였다. 포스코는 긍정적으로 검토하였지만 끝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관 제철소인 만큼 모든 공정이 하나로 연결되어 부서별로 성과를 따로 계산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근로자 전체로 성과를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한 개인은 2만5천명 중의 한 명에 불과하여 제도를 실감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실패하면 노사불신만 더 깊어진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달리 뾰족한 도리가 없어 성과급제를 시도해보기로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3년간 한시적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시작과 함께 포스코는 화려한 신화를 쌓아갔다. 현장의 관리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근로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성과급 제도를 도입한지 2년만에 당시로서 8천300억원의 순익을 올려 세상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근로자들이 그저 돌아가는 대로 꾸역꾸역 일하는 것과 어떤 도전의 목표를 두고 일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었다.

최근에 어느 자동차 부품회사가 극단적인 노사대립관계를 청산하고 협조관계로 바꾸면서 성과급 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연말에 엄청난 흑자를 내어 근로자 한 사람 당 1천200만 원을 받게 됐다. 이 회사에서도 앞서 시멘트 회사와 꼭 같은 근로자들의 행동변화가 일어났는데 하나 더 있었다면, 지금까지 매년 20명 정도가 근골격계라고 하는 근육통의 산재환자가 발생했는데 이제 그런 환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신이 나서 일을 하더라도 건강을 해쳐서는 안 되겠지만 즐겁게 일하면 아픈 몸도 아프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어차피 하는 일인데 일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얻고 덤으로 소득도 더 가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