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 더위 속에서 땀을 생각하다
불볕 더위 속에서 땀을 생각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0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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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무심코 거실 바닥에 누웠는데 거실 한구석에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결국 물걸레를 집어 들었습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뽀얀 먼지를 쓰윽 훔치고 나니 마음이 왠지 개운해집니다. 집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치우는 청소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가 바닥에 뚝하고 떨어집니다. 땀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땀방울을 훔치다가 문득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다녔던 여중학교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여섯 정거장을 가야하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야 집에서 한길만 건너면 닿을 만큼 가까웠지만, 중학교는 여섯 정거장을 가야하니 짧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중학생인 저에겐 짧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걷는 것이 몸에 좋은 것이라는 아버님의 말씀에 태풍이 불어 걷기가 어려울 정도의 날씨를 제외하고는 한마디 불평조차 못하고 꼬박 3년을 걸어 다녔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눈깔사탕 하나 입에 넣고 걷기 시작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입속의 단맛만을 느끼다 보면,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다 보면, 새로 짓기 시작하는 건물들에게 눈길을 주다 보면 어느새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합니다. 처음엔 멀고 길게만 느껴지던 그 길이 몇 달을 걷다 보니 제법 걸음걸이에서 속도감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어느 날은 출발과 도착시간을 재어본 적도 있습니다. 뭔가를 단축시키는 재미를 만들어갑니다. 무엇보다 그 길이 주는 즐거움은 변화하는 계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늘어진 버드나무 가로수에서 봄이면 연초록 나뭇잎들이 머리를 내밀고, 여름이면 진초록의 풍성한 잎을 매단 가지들이 이리 저리 춤을 추며, 가을이면 노랗게 변한 잎을 적절히 떨구기 시작하고 겨울이면 쓸쓸함을 더한 가지는 앙상한 뼈만 남긴 채 봄을 꿈꾸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독, 여름의 그 길이 떠오릅니다. 오동통한 애벌레들이 인도를 장악하고 있어 까치발을 하며 걸었던, 그러다가 머리위로 애벌레라도 툭 떨어지는 날에는 그 더위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끼쳐지는 소름이란 16세 소녀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였지요. 여름이면 걷기도 고역입니다. 그나마 아침에는 조금 낫습니다. 태양이 채 달구어지기 전 서둘러 나오면 오히려 상쾌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하굣길은 그런 행운이 별로 없습니다. 빳빳한 교복 속으로 스멀스멀 젖어드는 땀 때문에 불편하고 땀에 젖은 옷감의 모서리가 피부에 닿게 되면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만만한 부채도 없습니다. 가방에서 꺼내든 책받침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며 걷습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인가요?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찰나의 시원함에 그나마 숨을 쉬며 한발 한발 걷다보면 어느 순간 또 집입니다. 변변한 욕실도 없었지만 그저 찬물 한바가지면 족했습니다. 그 찬물 덮어쓰고 선풍기 앞에 앉으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열대야라고 부르는 밤이 오면 동생들과 옥상에 올라가 자리를 펴고 하늘의 별을 보며 노래도 부르고 수박도 먹고 깨알 같은 이야기들을 쏟아냅니다. 그곳엔 더위는 없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제 딸아이가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입니다. 아침이면 남편이 아이 둘을 차례로 태우고 학교로 배달을 갑니다. 고등학생인 큰딸은 처음 몇 개월은 버스를 타고 다니더니 그것도 불편한지 제 아빠를 아침마다 졸라댑니다. 중학생인 작은 딸은 등굣길과 달리 하굣길에는 걸어서 집에 옵니다. 버스정류소 세 정거장 거리입니다. 요즘 같이 36도를 웃도는 날이면 가끔 아빠를 호출하기도 하고 남편 또한 무더운 날에 아이들이 더위 먹을까 먼저 안달을 내기도 합니다. 땀에 젖어 얼굴이 상기되어 들어오는 아이를 보면 힘들겠구나 싶다가도 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그 마음 지긋이 눌러둡니다.

에어컨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입니다. 걷지 않고 차로 이동하고, 또 학교 건물 안에만 있느라 그 시절에 느끼고 누려야 할 계절감각을 포함해 다양한 감각을 놓치며 살까 걱정되는 것이 녀석들의 현실입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져 버린 아이들입니다. 지나친 보호로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 내성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걱정이 커집니다.

우리 아이들이 올림픽의 함성 깊은 곳에 선수들의 무수한 땀방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승리에 도취되어 잊지 않길 바라며 땀이 주는 즐거움과 가치를 알고 느끼며 이 한여름의 더위에 당당히 맞서면서 굵은 땀 흘리며 지냈으면 합니다. 땀을 통한 성장이 가장 정직한 성장이니까요.

<오양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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