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에서 에너지까지 야심찬 꿈·열정 빛 발하다
섬유에서 에너지까지 야심찬 꿈·열정 빛 발하다
  • 양희은 기자
  • 승인 2012.08.0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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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신규공장 방문(1991년 6월).

 

울산은 최종현 회장에게 있어 수직계열화 프로젝트의 종착지다. 그는 섬유회사(선경직물)에서 시작한 선경을 에너지·종합화학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꿈을 울산에서 현실로 이뤄냈다.

최 회장은 1975년 ‘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석유회사 필요론’을 설파했다. 1980년 걸프의 철수 후 정부는 유공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유공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유일한 기업이었다. 국내 대부분의 대기업이 유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1980년 11월 28일 박봉환 동력자원부 장관의 기자회견은 재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선경그룹이 유공 인수자로 최종 결정된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최종현 회장과 선경그룹을 잘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정부의 선정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나라 종합상사로서는 처음으로 상당량의 원유를 유공에 공급하고 있고, 앞으로 원유 추가 확보의 잠재력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산유국과의 친분도 두터워 오일머니 유치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최 회장과 울산의 인연은 1980년 SK가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선경그룹에 인수된 유공은 최종현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3년 동안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매출액은 40% 가까이 증가했고,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 경영으로 돌아섰다.

● 울산항서 산유국 기쁨 처음으로 맛봐

“회장님, 터졌습니다. 초대형입니다.”

1984년 7월 어느날 SK그룹 회장실. 노크도 없이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김항덕 유공 사장(전 SK그룹 고문)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최 회장에게 내밀었다. 예멘 마리브 유전의 운영을 맡고 있던 ‘헌트오일’이 투자자들에게 보내 온 일일보고서였다. 거기에는 매일 진행되는 작업 경과와 결과가 담겨 있었다.

“알리프 제1유정에서 석유가 나왔습니다. 매장량이 3~4억 배럴은 되는 모양입니다.”

깊이 4천m를 예정하고 시추를 시작했는데 2천m도 안된 지점에서 석유가 나왔다. 예상보다 빠른 결과였다. 최 회장이 안절부절 못하고 김항덕 사장의 주위를 맴돌았다. 일부에서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말렸지만 해외유전에 대한 투자가 옳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마리브 유전은 생산시설과 송유관 건설을 거쳐 1987년 12월 13일부터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1월 20일 유공해운 소속 ‘Y위너스호’가 35만 배럴을 싣고 울산항에 입항했다. 산유국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 1981년도 순시.

● 수직계열화 완성 수출주도형 기업 우뚝

최종현 회장이 1980년 인수하던 당시 유공은 국내 최대 회사이기는 했지만 지금과 비교해 보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작은 정유공정 2~3개만을 갖추고 있었다. 최 회장은 이 곳을 오히려 수출전진기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한다. 설비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작은 정유공정 2~3개에 불과했던 울산공장(현 울산CLX)은 꾸준한 확장을 통해 단순한 정유 사업 이외에도 석유를 기반으로 한 각종 응용화학사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1991년 6월 15일. 최 회장의 40년 꿈은 실현됐다. 유공 울산공장에 폴리에틸렌, 파라자일렌 공장 등 9개 새 공장이 들어서며 석유개발-원유정제-화학제품 등 석유 산업의 모든 부분을 총괄하게 됐다.

최 회장의 ‘원유에서부터 완제품까지 생산’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시작한 수직계열화 프로젝트는 그렇게 완성됐다. 선경은 울산에서 이룬 수직계열화 성공을 발판 삼아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수년간 10조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SK 석유화학사업은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2005년 처음으로 20조원대 매출인 21조9천145억원을 기록했다. 수출 역시 2005년에 10조6천888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다. 2005년을 기점으로 수출비중이 50%에 달하는 수출주도형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2010년에 45조8천669억원 매출에 27조7천208억원 수출을 기록, 수출비중이 60%를 넘어섰다. 수직계열화 원년 대비 매출은 11배, 수출은 27배가 증가했다.

▲ 369만㎡, 약 110만 평의 울산대공원.

● 대공원 헌사 ‘회색도시’ 이미지 탈바꿈

평소 “기부는 지갑이 아닌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던 최 회장의 고민은 울산대공원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평소 조림사업과 농업에 관심이 많던 그는 대공원 조성을 통해 ‘회색 도시’ 울산을 친환경도시로 바꿔보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마침 울산시에는 556억원을 들여 매입한 공원용 부지가 있었다. SK가 이 땅에 10년 간 1천20억원을 투자해 공원을 만든 뒤 시에 무상 기부하기로 했다. 1995년의 일이었다. 대기업이 지역사회를 위해 공원조성을 하는 식의 사회공헌 활동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울산대공원은 2002년 4월 1차 개방을 거쳐 2006년 완전 준공됐다. 무료 공원인 울산대공원의 크기는 369만㎡(약 110만 평). 110만 울산시민에게 1인 1평씩 공원을 나눠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7대 도시 중 공원 면적 꼴지였던 울산은 단숨에 공원 면적 1위 도시로 올라섰고, 회색 도시 이미지도 서서히 누그러졌다.

울산대공원은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기업과 도시의 동반 성장의 모범적 사례가 되고 있다. 정리=양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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