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바위 옆 바다에서 본 백수정
범바위 옆 바다에서 본 백수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5.1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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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보석인 자수정(紫水晶)이 매우 흔하게 유통된 시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온 일본인들은 골짜기 개울가에서 아이들이 주운 수정류의 진가를 알고 거의 싹쓸이 하듯 이 돌을 사갔다고 전해 들었다.

한편으로, 신석기시대에 살았을 반구대사람들이 예쁘고 신비로운 빛을 지닌 돌 그러면서 개울가 숱하게 널브러져 있는 이 돌을 주워 자루에 묶어 바위그림 새기개로 사용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추측을 해 보기도 한다.

언젠가 암각화 관련 세미나에서 K교수는 “타이완 고웅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옥공예품을 자수정으로 연마하였다는 기록을 보았다. 따라서 울주의 바위그림 새김의 돌감으로 자수정도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했다.

남양주시 호평동 구석기유적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출토된 석기의 종류 중 석기 제작에 활용된 돌감은 석영ㆍ규암ㆍ흑요석ㆍ혼펠스ㆍ유문암ㆍ응회암ㆍ셰일ㆍ역암ㆍ수정ㆍ벽옥 등으로 매우 다양한데, 대부분의 석영은 맥석영(脈石英)이며 유백색의 질이 뛰어난 것이 흔하게 관찰되고 드물게 몸체가 자갈돌인 것도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구석기 시대에 이미 석영ㆍ수정류가 긁개, 홈날, 밀개, 새기개, 뚜르개 등의 잔손질된 석기로 사용됐다고 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지인 강원도 고성 문암리에서 수정제 석기 등이 밀집 분포하는 유구 등이 확인되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울산군 편에 보면, 보석인 마노석(瑪瑙石)이 군(郡) 서쪽 원포리(遠浦里 지금의 중구 태화동)에서 난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울산 학성동 일원에서 건물을 짓기 위해 터파기 작업을 할 때 땅 밑 깊은 곳에서 흑요석 광상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수준일 수도 있으나, 울산지역에서 삼남면 작괘천과 상북면 등억리, 그리고 두서면 소호동과 경주 산내면의 접경 지역인 동곡마을에서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자수정 광산을 운영했음을 참고하면 울산을 받치고 있는 이 땅과 수정광상의 관련성은 허투루 넘길 정도는 아니라고 여긴다. 경주 인근에 사는 부인네 들이 산에 수정 주우러 가자는 이야기를 가끔 듣기도 한다.

보석의 생성 요인을 살펴보면, 마그마로부터 먼저 무거운 광물이 분리됨에 따라 마그마 속의 수분이 늘어나면서 높아진 유동성과 온도, 그리고 압력을 가진 열수에 의해 여러 물질이 녹아내릴 수 있다. 열수는 갈라진 바위 틈 속으로 들어가면서 온도가 서서히 내려간다.

이러한 진행 과정 속에서 이뤄지는 결정체 중 하나가 수정이다. 열수가 암석 틈 사이로 들어오면, 여성이 임신을 하듯이 바위 틈바구니인 정동에 열수가 자리 잡아 수천만년 동안 자라는 것이 보석이고 광석이다. 특히 열수가 수성암(퇴적암)과 접촉했을 때, 주로 석영류가 생성되는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울산 지역은 약 1억년전에는 공룡이 살았던 석호였으며, 이 지역은 수성암인 퇴적암이 기반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다 대략 7천만년전을 전후해 활발한 화산활동이 일어나며, 이 때 기반암인 수성암에 화강암이 들어와 자리 잡은 지역이기에 석영류에 속한 수정이 생성될 수 있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몇년 전 온산읍 당월리와 가까운 이진리의 범바위에 갔다. 옆에 펼쳐진 차일암에서 비록 하품이긴 하지만 석영류의 정동 수 십 개를 보고, 다시 범바위 앞 해안 매축지의 물 속 돌 틈으로 백수정이 노출돼 있음을 확인했다. 이미 정동은 파도에 깨어져 형태를 알 수 없었으나, 너무나 의외의 장소였다. 육각주상 형태를 지닌 원석 상태로서 약 2센티미터 크기의 백수정 3개가 부서져 나간 정동에 겨우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대개 육지의 암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것을 파도치는 물 속 바위 틈바구니에서 봄으로써 울산의 지질 조건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아마도 인근 산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 짐작해 보면서, 그동안 가졌던 울산지역의 수정광상에 따른 여러 가지 생각이 하얀 파도에 씻겨나가는 듯했다.

자수정은 오래전 삼남면 작괘천 동네 아이들의 용돈이 되기도 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산의 유명한 토산물이었다. 이진리의 어느 어부가 “저 산 비탈에서 손가락만한 크기의 수정을 숱하게 주웠심더라”는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전옥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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