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피제와 동헌의 천주
상피제와 동헌의 천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3.11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헌(東軒)이라면 고을 원님이 계신 곳이었다. 감사ㆍ부사ㆍ현감 등 지방 수령들이 입법ㆍ행정ㆍ사법을 집행했던 정청(政廳)이면서 건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 정신적 상징물이기도 했다. 동헌에는 반드시 아름드리의 중심기둥이 마룻방 복판에 버티고 서 있게 마련이다. 이를 천주(天柱)라 했는데 하늘 높이 계시며 아래 세상을 조감하시는 천제(天帝)와 직결되는 이 기둥을 옆에 두고 감히 부정한 처사를 저지를 수는 없었으리라 믿고 있다.

고을수령은 부임할때 이 천주를 향해 선정을 하리라고 선서하며 재판이 있을 때마다 이를 천주에 고하였다. 마치 서양에서 성서에 손을 얹고 선서하듯 동헌의 천주는 성서구실을 했으며 목민관의 양심을 다스렸던 것이다. 사람은 속여도 하늘은 못 속인다(人欺不天欺)라는 진리가 녹아 있는 것이다.

선비 이술원(李述源)이 성천(成川) 부사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동헌에 앉아 있는데 천리 밖 고향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뵈러 올라왔다는 전갈을 받는다. 반가워 신발도 신을 겨를도 없이 뛰어나가 얼싸안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한데도 동헌의 정문은 공문(公門)이므로 공무가 아닌 사사로운 일로 드나들 수 없는 것이 법도였기에, 동헌의 뒤편 구석에 담을 헐게 하고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한 구멍 즉 파장문(破墻門)을 만든 후 뒤쪽 툇마루에서 부자가 만나고 있다.

옛날부터 우리들의 선비들은 혈족끼리는 연관 부서에 부임해서는 안 된다는, 즉 상피제(相避制)를 실천했다. 오늘날에는 향피제(鄕避制)란 형태로 변형됐다. 향피제는 경찰지휘관이 지연ㆍ혈연ㆍ학연 등으로부터 자유롭게 치안행정을 펴나갈 수 있고, 지방토착비리 세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연고지에 배치하지 않는 관행을 뜻한다. 이 관행은 판사, 검사, 국세청 직원 등 인연관계에 민감할수 있는 공직자에게 대체로 해당됐으나 지금은 지역 실정을 더 잘안다는 이유로 연고지 배치를 권장하기도 한다고 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대공복(大功服: 아홉달 동안 입는 상복) 이상의 상복을 입는 본종(本宗: 성과 본이 같은 친척)이나 사위, 손자사위, 손위·손아래 매부와 시마복(석달복) 이상의 상복을 입는 외가 사람들과 동서, 손위·손아래 처남 등은 같은 부서에 근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정부(議政府)나 의금부(義禁府)·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 문·무관의 인사권이 있는 이조(吏曹)·병조(兵曹)는 4촌 매부·4촌 동서까지도 포함시켰다.

울산동헌 뒷마당에 세워진 30여 개의 선정비(善政碑) 하나하나에서 숱한 인연을 짐작하게 한다. 이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시차를 달리하고 울산에 근무한 흔적도 보인다. 결코 실력으로 부임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미국에서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쯤은 이미 우리 울산에선 과거사로서 헌 이야기에 불과함을 확인한다.

옛 울산읍성(학성도호부) 내에는 30여 개의 관아와 여덟 개의 우물이 있었다는데, 이들 우물가에서 그때의 아낙네들은 무슨 이야기 거리를 주거니 받거니 했을지 궁금하다. 울산동헌 앞마당 오른 쪽에 작은 집이 한 채 있는데 이를 내아(內衙)라고 하여, 수령과 그 가족이 기거한 살림집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동헌을 울산군(蔚山郡)의 회의실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군이 옥동(玉洞) 신청사를 지어 옮겨간뒤 도시공원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1981년 12월 22일 동헌과 내아를 중건하였다. 누군가의 설명이 없다면 현재 두 건물이 한 마당에 있었던 것처럼 알 것이고, 수령님이 참으로 공사(公私)가 다망(多忙)했겠다 라고 여기기도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취직난은 어쩔 수 없었는지, 타 지역에 발령을 받으면 혼자 가서 기숙사에서 살기도 하고, 가족을 몽땅 데리고 와서 함께 살기도 한다. 이러하니 대개 동헌을 둘러싸고 질투심을 포장한 숱한 이야기 거리가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춘향이와 변사또 이야기와 같은 코미디도 떠오르며 ‘솔로몬의 지혜’라는 물 건너 어느 동네이야기도 생각난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동헌’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었다. 어찌 보면 원님이 매사에 전문가도 아니면서, 고을 수령이 되어 엄격한 고을 살림을 맡다 보니 참으로 힘들었겠다라고 이해심이 일기도 한다.

초봄 옛 동헌을 둘러보다가 천주에 기대어 옛 일을 더듬어 봤다.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