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이 왜(倭)로 떠난 해안
박제상이 왜(倭)로 떠난 해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1.0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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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신라본기 열전 박제상 편에 의하면, 눌지왕이 즉위하자 삽량주 간(干)인 박제상에게 명을 내려 왜(倭)에 볼모로 가 있는 막내 동생 미사흔을 구출해 오라고 한다.

박제상이 왜로 떠났던 발선처(發船處)가 현재 현대자동차가 들어선 양정동의 율동(栗洞)이며, 이곳에서 출발하여 장생포를 거쳐 일본으로 향했다고 본다. 해서 왕경에서 토함산을 넘어야 도착하는 울산 북구 정자동의 유포석보 부근에다 세운 발선처 기념비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박제상의 부인이 망덕사지 부근의 장사벌지지에 주저앉아 남편을 배웅했다고 했다. 장사벌지지 제방 아래를 흐르는 강은 남쪽으로 흘러 어련천(語連川)이라 하여 이름이 바뀐다. 울산에서 이수삼산(二水三山)이라 부르는 어련천과 태화강이 마주하는 포구가 내황포구 일대이며 맞은편이 율동이다. 오래 전에는 율리라고 불렀을 것이다. 울산으로 흘러드는 경주 마석산이 발원지인 어련천이 그려진 울산부지도(여지도, 숙종~영조조)에 보면 입실 부근의 관문성 아래를 지나 울산의 농소와 경상좌도절도사영성의 성벽 아래로 흘러가는 어련천의 강폭은 매우 넓다. 강의 물줄기가 가늘어진 이유를 찾아 가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신라 시대에 경주 지역에 수십 차례 발생한 지진에 의해 어련천 일대 지형이 변형됐다고 본다. 오래전 어느 날 큰 폭우가 내리면서 북구 중산동의 동대산맥에서 토사가 밀려 내려와 중산동일대의 계곡이 범람했다. 그 때 어련천 변에 박아 둔 옹기굴이 토사에 의해 묻혔는데, 이 주변에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기초공사를 하던 중에 옹기굴도 발견됐다. 어련천 주변의 7번국도를 따라 울산으로 오는 길 곳곳에 약간의 언덕이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여러 연유에 따른 지형의 변동에 의해 어련천은 남쪽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땅 속으로 스며들면서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깃든 괘릉리의 영지(影池)를 만들고, 신라 제38대 원성왕릉인 괘릉 주변은 물길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 복류(伏流) 현상을 보인다고 추정된다. 그 물줄기는 다시 원동천이 되어 북으로 흘러가면서 형상강 줄기와 만난다. 따라서 지금의 동천 일대는 지각의 융기현상에 따라 물길이 막히면서 물줄기가 가늘어졌다고 볼수 있다.

박제상 부인이 남편이 타고 가는 배를 보고 배웅한 제방 장사벌지지 아래 흐르는 강물이 관문성을 지나고 계속 남쪽으로 내려오면 율리포구에 도착한다.

1937년 충남 공주의 유학자 이병연이 편찬한 ‘조선환려승람’에서 장생포항을 설명했는데, 박제상이 일본(왜)으로 떠난 발선처라는 기록 ‘長生浦 在郡南二十里新羅忠臣朴堤上入日本時遊于此東有竹島 西有熊林’(장생포 재군 남쪽20리 신라충신 박제상이 와서 일본으로 향해 갈 때 이곳에서 떠났다. 동쪽에는 죽도가 있고 서쪽에는 웅림이 있다)을 찾아내어 울산제일일보에서 기사로 밝혔다.

그동안 각계에서 발표한 박제상의 발선처는 경주의 배반동 ‘망덕사지 앞 포구’, ‘양남 실리 포구’, 울산의 ‘북구 정자동 율포’ 등지를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중구 반구동 고대의 항구 유적지도 유력한 발선처라고 주장하였는데 양전동의 율리는 동천을 두고 마주하기에 관심이 가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당시 박제상은 왜국에 도착하여 거짓 정보를 흘린다. “마치 본국에서 배반해 온 자와 같이 하였는데, 왜왕이 의심하였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백제인으로서 왜에 들어가 참소하기를 신라가 고구려와 더불어 왕(왜)의 나라를 침공하려고 꾀한다고 하니, 왜가 군사를 보내어 신라 국경 밖에서 순회 정찰하였다. 마침 고구려 군사가 와서 왜의 순라군을 모두 잡아 죽이니 왜왕은 제상이 정말 나라를 배반한 자로 여겼다.”

박제상은 조국을 배반한 신분으로 위장했기에 가족과의 상면을 마다하고, 배반동 망덕사지 앞 포구 긴 모래벌 둔턱에서 부인의 배웅을 뒤로하고 서둘러 목선을 타고 출발하여 어련천을 따라 내려왔다. 울산 양정동의 율리포구에서 숨고르기를 한 다음 장생포에 도착하여 노곤한 하루를 정리했으며, 다음날 장생포를 떠나 연안을 따라 계속 남쪽 해안으로 옮겨 가다가 왜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어느 포구에서 왜로 향해 뱃머리를 돌렸을 것이라는 그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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