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에 받는 달력
동짓달에 받는 달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11.2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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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冬至)날은 아세(亞歲/작은설)라 하는데 다음 해가 뜨는 날이란 뜻이다. 궁중에서는 설날 아침(元旦)과 동지를 같이 한 해의 으뜸 되는 날이라 하여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희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초기까지만 해도 동짓날은 백성들의 빚을 청산해 주어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한 해를 시작하라는 의미로 하루를 즐기는 날이었다.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 목사(牧使)는 특산물로서 귤을 임금에게 진상했다.

동짓날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의례가 있다. 이 날은 집집마다 팥죽을 쑤는데 찹쌀가루로 새알 모양의 떡을 만들어 죽 속에 넣어 새알심을 만들고 나이만큼 새알심을 먹기도 했다. 팥죽국물은 문짝과 사방의 벽에 뿌려 액(厄)을 막고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하여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러한 풍습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나온다. 중국 땅에 있었다는 요순시대에 형벌을 맡았던 신화적인 인물인 공공씨(共工氏)가 아들 하나 두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다.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역질 등을 물리치는 것이라 했다.

중국의 송나라 때 사람으로 주희의 스승인 유자휘가 쓴 지일시(至日詩)에서도 ‘팥죽으로 귀신을 눌러 이기는 것은 형(荊?楚) 지방의 풍속을 사랑하는 것이다’고 전해 주고 있다.

기독교의 성서인 출애굽기편 12장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기를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말하라. 그리고 ‘흠이 없고 1년된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楔柱)와 인방에 바르고’라는 말씀이 나온다. 문설주에 뿌린 양의 피는 예수의 피를 상징하며 피를 바름으로써 차별되어 구원의 확신을 얻는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붉은 피 빛은 양기(陽氣)가 있다하여 동?서양을 아우르면서 구원의 상징물로 전해오고 있음을 본다.

동국세시기에는 11월이 되면 천문 관측과 역법(曆法) 등을 관장하는 기구인 관상감(觀象監)에서 달력을 만들어 궁에 올린다. 그러면 임금은 이를 황색으로 장식한 표지의 황장력(黃粧曆)과 백색 표지의 백장력(白粧曆)을 구분하여 나누어 주는데 이때 동문지보(同文之寶/공자의 친손자인 자사(子思, BC 483~402)가 쓴 중용(中庸)에서 따온 글로써 ‘천하가 통일되어 태평함’이라는 뜻이 새긴 라는 어새(御璽)를 찍었다. 각 관청(官廳)에서도 모두 나누어 받는 몫이 있었다. 각 관청의 아전들도 각기 친한 사람을 두루 문안하는 것이 통례였다.

인사관리를 담당하는 이조(吏曹)의 아전들은 각각 벼슬한 집에서 자기가 도맡아 고신(告身/관리로 임명된 이에게 수여하는 증서)을 써 준 사람이 직무에 취임하게 되면 그로부터 일종의 선물인 당참전(堂參錢)을 받는다. 그러면 그 아전은 통례에 따라 이 때 청장력(靑粧曆) 한권을 그 사람에게 기증한다.

이러한 풍습이 전래되어 서울 지방에서는 여름철 단오날의 부채는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 주고 동짓날의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친다. 이것을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한다. 그러면 그 관원은 그 달력을 자기 출신의 친지, 묘지기, 농토관리인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서긍의 고려도경 권40 역법제도 정삭(正朔) 편에 의하면 고려가 송에 사신을 보내어 정삭을 요청했는데, 이때의 정삭이란 천자가 제후에게 나누어 주던 달력으로 계절(時), 달(月), 날(日)을 함께 맞추어 바로 잡기 위함이었다.

우리 나라 기술로 만든 최초의 달력은 1444년 세종임금 재위 26년에 산술(算術)을 정통하게 연구한 봉상판관(奉常判官) 이순지(李純之)와 집현전 정자(正字) 김담(金淡)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역서인 칠정산(七政算)을 꼽는데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에 대한 해설서이다.

1895년 음력 9월9일에 내린 고종황제의 조칙에 의해 그 해의 음력 11월17일을 1896년 1월1일로 선포한 것이 우리 나라 양력의 시초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얼핏 보았듯이 달력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장악한다는 그 사실은 오늘날에 와선 우리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스마트폰이 담당하고 있는 듯하지만 전남 순천 선암사 해우소(解憂所)의 일력(日曆)이 지닌 매력이 더 오래 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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