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에도 끄떡없다
비난에도 끄떡없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9.0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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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랜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의 일이다. 공항에 도착한 그가 여러 명의 미국 국회의원들과 함께 나타나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반대자들은 일제히 그가 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다음날 신문에 김 전 대통령의 인터뷰기사가 실렸다.

그는 비난 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머뭇거림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사진을 잘 보세요. 내가 제일 먼저 걸어나왔습니다. 만일 내가 그들 뒤를 따라나왔다면 겁쟁이에 사대주의자겠지만 그들이 날 따라 나왔으니 난 사대주의자가 아닙니다.”

상대의 비난에 감정적이고 즉각적인 반격 대신 일보후퇴의 냉철한 대응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이 한마디로 그는 엄청난 정치적 지지세력을 얻게 되고 훗날 대통령이 되는 중요한 전기가 된다.

누구라도 자신을 비난하는 말에 할 말이 있다. 어린 학생과 주부를 포함 수백 명의 죄 없는 시민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에게 간수가 물었다.

“당신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럼요 이런 점 저런 점 이런 면 저런 면 억울… 억울…”

살인마가 자신의 정당성, 타인의 문제점을 늘어놓는데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자그마치 여섯 시간 반동안이나 죽은 사람들을 비난하며 하소연하더란다.

이게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변호하려한다. 그러나 감정에 복받쳐 위기에서 빠져나오려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마치 함정에 빠진 개미가 살려고 하면 할수록 개미귀신이 만든 함정에 더욱 깊이 빠지는 것 처럼 프로는 어떻게 비난에서 빠져나올까?

여러분 자신에게 가해진 그 숱한 말을 분류해보라. 사과 농장에서 과일분류기를 통해 굵고 실한 놈, 잘고 고른 놈 자동으로 분류하면 실한 놈 3개에 부실한 놈 7개가 나온다. 인간관계도 엇비슷한 확률이 적용되는 바 칭찬이 3이라면 비난은 그보다 훨씬 많은 7이다.

칭찬을 되로 받는다면 비난은 말로 받는게 현실이다. 칭찬은 에너지와 교양, 인내와 훈련이 필요하지만 비난은 본능적으로 나온다. 특히 배려문화가 부족한 우리네 상황에선 더욱 비난이 판친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상사나 고객에게 받은 비난을 술로 푼다. 아니면 죄 없는 애를 잡거나…

“니네들이 월급쟁이의 비애를 알기나 해.”

“너희 가르치느라고 이 아빠가 얼마나 수난을 당하는 지 아니?”

이런 방법들은 자신을 더욱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비난에 대한 맞비난은 다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비난, 저주, 야유, 왕따 등 부정적 스트로크(negative stroke)를 받았을 때는 심리적으로 빨리 청산하고 빠져나오고 싶어한다. 그 방법으로 동료에게 하소연, 없는데서 상사 욕하기, 자기 학대 등을 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모두 비난으로 인한 상처로부터 확실하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욱 문제를 악화시킨다는데 취약점이 있다. 일류 포수가 강속구, 변화구 다 받아내듯 프로들은 비난을 제대로 받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비난 받고 짜증내는 건 스스로를 망치게 할 뿐이다.

DJ 같이 상대의 비난 자체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비난받아도 속상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비결 중 또 하나는 비난의 재구성에 있다.

“한심한 사람 같으니.”

“한심? 아하 그렇지 난 一心을 잃지 않는다구.”

“야 바보야!”

“바보? 아하 그렇지 난 바라볼수록 보고픈 사람이니까.”

또 비난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사람도 있다.

“부장님이 야단치실 때마다 제 자신이 성장하는 걸 느껴요.”

“고객분들에게 지적받을 때마다 개선이 이루어진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바랍니다.”

비난 받는 순간 당신은 어떤 유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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