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괘천과 수석정
작괘천과 수석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8.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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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면 교동리 작괘천은 부르기에 입에 잘 붙지 않는다. 酌-따를 작, 掛-걸어두다 괘, 글자 그대로 바위에 술잔이 걸려있는 듯하며, 이 잔에는 자수정동굴을 빠져 나온 폭포수가 바위에 걸린 술잔에 철철 넘치듯 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작괘천은 해발 1,083m의 간월산에서 발원해 30여m 높이의 홍류폭포를 거치면서 계곡의 화강암을 다듬었다.

길이 900m, 너비 50m나 되는 한 덩어리의 화강암이 세월에 담긴 물살과 모래 알갱이에 깎여 마치 술잔을 늘어놓은 듯 파여진 웅덩이를 선녀탕 또는 옥녀탕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본명은 돌개구멍이다. 석영이 빠져나간 암석에 만들어 놓은 돌개구멍에는 출렁이는 물결과 달빛이 어울려 더없는 매력을 연출한다.

작괘천 물가에서 도로변으로 보면 크기가 승용차 만한 귀신고래 한 마리가 덥석 올라와 앉아 있다. 애써 눈여겨보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고래바위를 볼 수 있다면 이 계곡에서 얻는 최고의 팁이 아닐까?

2006년 4월 27일 작괘천 주변의 여러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천도교의 표상인 ’인내천 ‘바위를 가장 또렷이 볼 수 있는 포토존(photo zone)이 어디일까라고 어그정하니 한 폼 하면서 물가로 내려갔다. 이곳저곳 햇살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가는 가운데 발견한 것이 고래바위다. 자꾸 보니 더 더욱 귀신고래의 형상을 빼닮았기에 ‘귀신고래바위’라 이름 지어주고 여러 장의 인정샷을 눌렀다. 귀신고래바위가 이제 왔냐고 하며 함께 빙그레 웃어 주었다. 작괘천에서 가장 돋보이는 바위 중 하나로 꼽았다.

작괘천에서 비교적 물에 잘 젖지 않는 백포반석(白鋪盤石)은 여행객들에게 멋들어진 평상(平床)을 제공해 준다. 이 반석은 조선 왕조 말 천주교가 박해를 받을 당시에는 노천(露天) 교회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바위에 새겨진 수백 개의 글귀가 지나가는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작괘천 하면 따라 나오는 곳이 작천정(酌川亭)이다. 조선 세종임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도 하고,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설과 함께 옛 시인묵객의 시편이 걸려 있어 작천정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1902년 군수 최시명(崔時鳴)이 여름에 헌양시사(獻陽詩社)를 정비하면서 정각을 건립하고 이름을 작천정이라 했다.

작천정 현판이 계곡을 보고 있다면, 도로 쪽 축대를 보고 바투 걸린 현판은 수석정(漱石亭)이라 쓰여 있다.

글의 어원을 살펴보면 진(西晉: 265∼317)나라 초엽, 풍익 태수(馮翊太守)를 지낸 손초(孫楚)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대부 간에는 속세의 도덕 명문(名聞)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哲理)를 중히 여겨 담론(談論)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손초가 유교의 형식주의를 무시하고, 노장의 허무주의를 숭상하여 죽림에 묻혀 청담을 일삼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한 뒤 그 어느 날,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마음속 품은 생각을 내보이면서,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미인 침류수석(枕流漱石)을 말해야하는데, 반대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뜻으로서 수석침류(漱石枕流)라 말했다. 이를 들은 왕제가 웃으며 손초의 실언(失言)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 손초는 다시 말하기를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허유(許由)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해서라네” 라는 궤변으로 고집을 지켰다고 한다.

문헌을 찾아보니, 장자(莊子 BC 369~BC 289년경)의 ‘소요유(逍遙遊)’ 인물편에 요임금(堯 BC 2356년~BC 2255년/고조선 단군왕검시대)이 허유(許由)에게 정치적 권세를 양위하고자 간청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치라면 결벽증을 내보이며 담을 쌓은 허유가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영천수(潁川水)에 가서 귀를 씻는데, 때마침 친구인 소부(巢父)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물가에 왔다가, 소에게 더러운 이 물을 먹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비유한 것이다.

수석정 현판을 보고 나와 언양읍 송대리 화장산 북쪽 자락 소부당골에 가서 소부당 못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가끔 언양 사람들이 스스로를 올곧은 양반이라 구분 지우려는 듯한 분위기를 보면서, 그 뿌리가 무얼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소부당 못이 아직도 건재하고 작괘천 정자에 걸어 둔 현판 수석정을 보면서 비로소 고집스런 언양인의 자존심 한 자락에 걸린 숙제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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