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청와대 수석비서관 시절(7) - 프로야구, 산고를 겪었다
《제92화》 청와대 수석비서관 시절(7) - 프로야구, 산고를 겪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4.1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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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룹이 빠지면 삼성 그룹도 빠지겠다는 것이었다. 프로야구에 참여하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참여하는 회사들의 규모가 고루 커야 하는데 현대가 빠지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당장은 어떤 해결 방안을 내놓을 수 없어서 삼성은 잠시 유보 상태로 놓아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금호그룹의 박 회장이 청와대로 나를 찾아왔다. 박 회장은 경제학 박사로서 전에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러고서는 ‘프로야구 건은 전(全) 대통령께서 직접 지시하신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저희 금호그룹은 빼주십시오. 요즈음 회사에 내분이 있어서…’라고 사정을 말하였다.

분명히 밝히지만 프로야구의 태동은 정치색이 없는 순수한 나의 생각이었다. 문화일보(1991. 11)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어서 요약한다.

박영길 감독의 말이 인용되었다. ‘광주사태로 민심이 흩어졌으니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고 싶어 여러분을 뵙자고 했습니다. …대통령께서 귀국하시면 브리핑을 해야 하는데 자료가 있습니까?’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 중에 민심을 조종하려고 프로야구를 구상할 수 있었는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박영길 감독이 이호언씨와 이용일씨를 적극 추천하였다. 나의 야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축구와 야구 관계자들은 프로체제를 갖추어 운영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경쟁하던 모습을 보였다. 이때 야구 쪽에서는 과거 70년대 후반,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지 않아 프로야구의 탄생이 좌절되었던 경험이 있어서 나의 소박한 생각에 더 적극적이었다. 이호헌씨의 증언이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이상주 교문수석이 박영길 감독을 만나 야구계의 실정을 들은 뒤, 우병규(禹炳奎) 정무 제1수석비관이 이상주 교문 수석을 만나 KBS 해설위원 이호헌을 만난 일이 있느냐고 물었대요. 이 호헌을 만나보면 좀 더 구체적인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해서 이상주 교문수석이 나를 불렀던 것입니다. …(이상주 교문수석이)정부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할 수없는 처지니 독자적으로 해결하든지 돈 없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잘 하면 돈 한 푼 안들이고 프로야구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주 교문수석은) 깜짝 놀라며 그런 방법이 있느냐며 반색하고 (이호언의) 1주일 안으로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갖고 오겠습니다에 (이호헌의) 손을 덥석 잡으며 ‘좋습니다. 꼭 부탁합니다.’라고 반가워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지시한 정책을 이렇게 추진하지는 않는다.

당시 홍순일(洪淳一)기자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숨은 이야기가 나온다.

‘스포츠 프로화에 앞장섰던 청와대의 11인 수석 비서관들 중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아 프로야구 탄생에 얽힌 궁금증은 엉뚱한 억측을 낳게 했고 또 이를 사실처럼 믿고 있었다.…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프로야구 탄생의 주역이었던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담당 수석 비서관은, ‘프로야구는 5공의 부산물은 아니다. 내손으로 초안을 잡아 내손으로 빛을 보게 했으므로 탄생과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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