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서울대학 선비가 되어(6)
《제80화》 서울대학 선비가 되어(6)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3.1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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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운동권 출신도 챙겨주셨다.

정리자(박해룡)가 이상주 총장의 제자 한 사람을 더 만났다. 지금 동국대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박부권 교수를 만났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970년대 초,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생회의 학술부장으로 ‘민주주의 수호 청년협의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다가, 대학을 8년 만에 졸업한 운동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학생시위를 주도했었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 출범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교육분야) 위원으로 일을 했으면서 한 번도 권력의 핵심이나 주변에서 어떤 직책을 맡지 않은 제자라면 가식적인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회고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부권 교수는 대학시절 교육심리학을 전공하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상주 교수의 영향으로 교육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여러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대학원에서는 이상주 교수가 논문지도 교수가 되어 석사논문의 중심과제(교과서 편찬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를 잡아주어 연구하게 하다가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청와대로 갔으나 실질적인 석사논문 지도교수이었다. 그가 강조하는 이상주 교수의 교육사회학에 대한 열정은 ‘교육학 전체 테두리 안에서 교육사회학의 정체성 확립’이었다. 그때까지 만해도 교육심리학이 교육과학이라는 패러다임을 형성하면서 교육학 분야에서 주도적 입장이었는데 교육이 ‘사회’에서 이루어지는데 교육에 관한 사회학적 접근이 안 되고 있어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학원 시절, 이상주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을 모시고 간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대학원생이었으나 학부학생들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제자들을 충심(衷心)으로 걱정하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운동권에 들어가서 활동하지 마라. 운동권 활동이 꼭 사회정의는 아니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옳은 일을 바르게 하는 일이 어찌 운동권의 주장만 있을 수 있느냐? 뿌리를 내려야 할 사회가 운동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깊이 생각해보자.’

당시 민주화 운동은 대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운 원칙, 원리를 주장하는 것이었고, 한 편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시끄럽고 무질서하게 보여도 ‘선거’라는 의사표시 자체가 훼손되고 있을 때, 민중의 불만을 쏟아낼 배수구(排水口)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대학생 시절에 운동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렵게 졸업을 하여도 일을 할 자리가 없었다. 거의 모든 조직에서 배척하던 시절이었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교수 출신의 이상주 교육문화 수석이 제자들을 위해 현실 사회가 어떠한가를 가르쳐주기 위해 설득에 설득을 하였다. 운동권 출신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특히 석사학위 논문 계획서를 학과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할 때, 여러 사람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마 이것은 서울대 대학원의 까다로운 전통이었을 것이다. 질문의 상당 부분은 학문적 공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것을 교수님께서 일일이 방어해주셨다. 사실은 연구자인 대학원생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답변하고, 아니면 수정하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일인데 교수님께서 다 해주셨으니 운동권 출신의 늦깎이 대학원생은 안도의 숨만 쉬고 있었다. 운동권 출신을 감싸주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따뜻하면서도 불같은 정열의 소유자이신 교수님은 이종각(강원대) 교수가 규정하듯이, ‘열정, 능력, 정의감의 3박자’를 두루 갖추신 분이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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