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유학생활(7)
《제72화》 유학생활(7)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1.02.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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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천포 이상주 박사가 직접 메모하여 준 육필 원고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겠다는 정리자 박해룡의 판단으로 해설이나 윤문(潤文)을 하지 않고 원문대로 소개하는 것이다. 독자의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뉴욕 주 올버니(Albany)에서 1년2개월의 인턴 기간을 마치고 피츠버그로 돌아오니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제 논문을 손질할 일만 남았다. 학위논문의 챕터별로 싱글톤(지도교수)에게 넘기고 수정 받고 다시 넘기곤 했다. 이제 마지막 오랄시험에 통과해야 했다. 그날은 사회사업 대학원 쪽에서도 교수 한 분이 오셨고, 뉴욕 올버니에서도 Helen Wolfe 박사께서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 주셨다. 고마운 일이었다.

날카로운 질문과 답이 서로 오고 간 뒤에 싱글톤 교수께서 밖에 나가서 대기하라는 말씀이 있었다. 밖에서 초조하게 한참 기다렸는데 싱글톤 박사가 드디어 나오셨다. Congratulation, Dr. Lee! 너무나 기쁜 말이었다. 그런데 싱글톤 교수가 활짝 웃으며 손에든 전보 종이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며칠 전에 전보가 왔는데, 서울대학에 채용된 것을 축하 하네.’

박사학위 논문도 통과되고 서울대학 교수까지 되었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위의 내용에서 몇 가지 첨가할 것은 첫째로 서울대학에서 나의 행적을 조사하고 추적하여 전보를 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유학의 단초를 마련해준 정범모 교수님에게 나는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 영역, ‘발전 모델’에 관한 것을 알려드렸고, 논문 제출 일정도 말씀을 드렸었다. 이런 스케줄을 알고 계셨던 정범모 교수님이 미리 준비를 해주셨던 것이다. 특히 논문에서 곧 마칠 것 같다는 자신감을 보고 드렸기 때문에 마침 서울대학의 개학에 맞추어 바로 귀국하도록 전보를 보냈던 것이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으로 금방 연락 될 수 있었던 것을 학과로 전보를 보내고 지도 교수가 나에게 바로 보여주지 않고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 갖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에 박사 따러 간다’고 하니까 미국에 가면 모두 성공적으로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돌아오는 줄 알고 있었던 점이다. 분명히 밝히건대 일부는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불법체류하거나 박사학위를 받아야 연봉이 많은 직업을 갖기가 어려우니 영주권 받아 비즈니스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셋째는 구두시험(Oral test)에도 불합격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는 논문지도 교수가 먼저 자청하여 한 학기 더 공부하여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좋겠다고 불합격 시키는 경우가 있다. 심사위원들이 미리 배포된 학위신청 논문을 꼼꼼하게 읽고 해당되는 분야에 관해서 여러 가지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나 테스트 하는 것이다. 즉, 실력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그러고서 학생을 내보내고 심사위원들끼리 합격, 불합격 여부를 판정한다. 이 때 밖에서 기다리던 학생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다.

나중에 싱글톤 지도교수에게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느냐고 물었더니 의아해 하면서 잠시 껄껄 웃더니 다른 학생들은 교수들끼리 다시 토론하느라고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하면서 나의 경우는 빨리 끝난 편이라고 하였다.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이었다. 정리=박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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