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法治)와 덕치(德治)
법치(法治)와 덕치(德治)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2.0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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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法治)와 덕치(德治)는 서양과 동양의 법(法) 문화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법치(rule of law)는 서양의 법문화이며, 덕치(德治) 혹은 예치(禮治)는 동양의 법문화라고 한다.

법치주의는 시민사회와 왕 사이의 ‘권리를 위한 투쟁’ 과정에서 정립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국가 혹은 국왕 권력은 시민계급이 장악한 의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법률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법치주의 이념이 정립된 것이다. 결국 법치주의는 투쟁의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반면, 동양에서는 서양의 법치주의보다는 덕치, 혹은 예치를 존중하였다. 덕과 예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유교적 문화가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었다. 덕과 예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덕과 예로써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보는 경우, ‘권리를 위한 투쟁’이란 덕과 예를 알지 못하는 오랑캐의 문화라고 폄하된다.

우리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력자들이 우리 사회를 덕으로써 통치를 한다면, 연민과 애정으로 우리 사회를 통치한다면, 국가의 권력구조가 공화제이든 군주제이든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 권력구조란 그 자체가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덕치주의는 덕의 지배가 가능하다는 전제에 서있다. 덕의 지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애정이 그 바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극히 복잡하고,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애정 등을 바탕으로 하는 덕의 지배가 가능할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덕치주의를 존중했던 동양에서도 덕치가 실현되었거나 덕치를 향해 나아갔던 시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권력이란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확보되고 보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법치주의는 권력의 속성,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내재된 투쟁적 속성을 솔직하게 파악하여 내놓은 이념이다. 어느 순간에 남용되어 괴물로 변해버릴지 모를 왕의 권력, 혹은 국가권력을 법률로써 통제하여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이 법치주의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치주의에는 절대적 전제가 있다. 그것은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이 국가권력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회의 다수파가 모든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의회가 권력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 법치주의는 일종의 눈속임에 불과해진다. 법치주의가 극도로 타락된 예가 바로 나치정권이다. 나치스는 모든 사람의 인권보장이라는 법치주의 이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체제를 바로 ‘법률’에 따라 구축한 것이다.

최근 우리는 사정기관이 엄정한 법집행을 주장하면서 법치주의를 내세우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기 위한 이념임에도 법치주의를 권력행사의 정당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의 인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말라는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에 대한 외침인 것이다.

덕치주의 이념은 우리 사회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우리 헌법이 받아들인 법치주의 이념, 이것마저도 우리 사회에서는 심각하게 왜곡되어져 있다. 사람의 인권은 함부로 침해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침해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 침해의 방법 등을 엄격한 법률로써 정해야 한다는 이념이, 법률을 만들기만 하면 그 법률의 내용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그 법률에 따라 국민을 통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안과 밖이 매우 위태롭다. 사회 안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더욱 더 팍팍해진다고 한숨이다. 각종 수치들은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고 하지만, 물가는 오르고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힘겹다. 사회 밖에서는 전쟁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모든 것들을 집어삼켜버릴 전쟁,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굳건한 안보의식과 단결된 국민의식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걱정스럽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법치주의는 언제나 후퇴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사회적 위기상황이 결합하는 것은 결국 인권의 침해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태섭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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