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금도끼
아, 금도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11.0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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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운동장 노천극장 자막에 울산정유공장 굴뚝 솟구쳤다.

책보도 매며 넝마도 매며

교과서 귀퉁이 삐죽이 실려 다니며

양호선생님이 배급해준 강냉이죽 옷깃에 묻히고

하얀 우유 더께 뭉치 이빨로 깨물어보던 아이가 잠들면

꿈속에서 연못에 빠뜨린 금도끼만 찾았다.

이슬 털고 펄럭이는 만국기 밑

흰 모자 쓴 아이들이 덧신발로 마구 뛰며

검정 블루머 흰 런닝 차림으로 노란 깃발 따라가던 날

“왜 새벽종은 울렸나?”

“새 아침은 언제 밝았나?”

가을걷이 끝난 동네 지붕들 팍삭 내려앉고

추석달이 산 넘어 박꽃처럼 눈부시게 질 무렵

고무공장으로 플라스틱 공장으로

아이들이 사라졌다.

동청 처마 밑 밤새 울던 하모니카 소리

오래된 동네 우물 귓바퀴 맴돌고

월남 갔다 온 친구 오래비방 포르노 사진 요기서리면

DDT가루 화장실 판자위에 소금꽃으로 뿌려지고

우물 속 두레박이 우는 소리 명징했다.

<시작노트>

유년의 기억 저편에 서 있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우울 ‘아, 금도끼’를 시로 형상화한지가 벌써 몇 년째인가? 결국 쓰고 싶지 않은 시제를 쓰고야 말았고 재직하고 있는 문수고등학교 시낭송의 밤에 학생 청중들과의 교감 여부도 고려하지 않고 멋없게 읽어내고야 말았다. 학생 사회자가 ‘왜 이 시를 선택했느냐?’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혁신이라는 시대적 운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보탬이 될 수도 있고 때론 재앙이 되기도 한다. 1%의 가능성이라도 쫓아가는 일들의 출발은 쾌정서가 남거나 시대적 동감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동해로 동해로 산을 넘어 울산을 찾아와서 살아본 사람은 울산에 염포가 있고 근처에 감포가 있다는 놀라움을 체험했으리라.

부족함이 많았지만 꿈이 묻어 있던 시대! 꿈이 많았기에 놀라움도 컸던 시대가 있었다. 조그마한 혜택 하나에도 고마워하고 즐기고 노래할 줄 아는 시대였다. 그 1960년대 시대적 상황속에서 한 아이가 보고 자란 일들이 이 시속에서만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화같은 일들과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아리고 시린 기억들이 번갯불처럼 당겨져서 전광석화로 빛나던 과거의 한 편린이 되어 과거의 세월에 온전하게 묻혀 있지 않은가? 풍요로움 속에서도 잊어버리고 잃어버려야만 하는 상실의 시대에 살면서 경제와 정보와 힘의 논리를 쫓아가는 21세기 패륜적 정신 병리의 치유책이 60년대식 동네 사랑방의 퀴퀴한 냄새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의 기억에 이르렀다.

울산정유공장도 강냉이죽도 탈지우유도 고무공장도 플라스틱공장도 월남도 DDT가루도 하모니카소리도 포르노사진도 여느 가을 볕바른 날 동네 초상집 상여소리 따라 우르르 움직이던 동네 어른들 발뒤축보다 아이에겐 더 신선하게 다가가 있었다.

아무도 삶의 원자료를 도외시하는 사람은 없다. 경배해야 할 우리의 의식, 우리의 출발점,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인정스러운 이웃들과 가족 우리의 후미진 황토길. 그 길 위에 아스라이 흑백 필름처럼 우리의 의식이 물오르고 있었던 잊혀진 50년 동안의 목마름에 웃자란 우리의 높이여!

/ 엄덕이 시인

< 약력 >

1998년 시집 ‘꽃의 미래’ 출판. 2002년 시와 비평 등단. 2002년 시집 ‘작동 가는 길’ 출판.

현재 울산 문수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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