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폭력적인”
“영화보다 더 폭력적인”
  • 김명석 기자
  • 승인 2010.09.3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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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장가에서 개봉중인 한국영화의 폭력성과 그 잔인함에 대해 여론의 비판이 따갑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와 <아저씨>는 각각 200만과 500만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대부분은, 폭력의 도가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영화 <아저씨>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전직 군 특수요원인 차태석(원빈 분)이 마약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옆집 여자의 딸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악당들을 잔인하게 복수한다는 내용의 줄거리다. <악마를 보았다> 또한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보복을 하는 자는 법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믿는다. 정당한 공권력으로는 악을 응징할 수 없다는 믿음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감정이입이 된다. 물론 영화 속의 상황 설정이 정당한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관객들은 극장으로 몰려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는 당연한 것이며, 잔인한 복수를 하는 자들은 영웅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법의 평등성에 대해 평소 반신반의하던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조폭마누라> 이후, 조폭영화는 흥행의 보증수표로 공식화된 우리 영화의 장르이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폭력에 대한 묘사는 더욱 디테일해지고 그 수법 또한 치밀해지고 잔혹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70~80년대만 하더라도 영화 속 폭력의 수위는 지금처럼 잔인하지는 않았다. 그런 장면이 없더라도 관람을 하던 젊은 여성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연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관객들이 보면 아주 유치한 장면에서도.

왜 그런가? 말하자면 관객들이 용인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수위가 높아졌다는 반증이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범죄의 유형이 다양화되고 그 수법도 치밀해지고 있다. 극장 밖의 현실이 더 폭력적인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영화가 그 현실을 여과없이 노출하고 다시 현실을 영화가 모방하여 범죄를 일으키는 상승작용의 측면이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영화 속의 폭력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미 우리 모두는 그런 폭력에 길들여져 있고,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대중들의 심리와 수요에 의해 폭력 영화는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무법의 잔혹한 세상, 도처에 죽음만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 오로지 잔혹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에서만 그 잔혹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세상, 어느 새 극장 밖은 영화보다 더 잔혹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얼마 전 경남 창원의 마창대교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43살의 아버지와 10살의 아들이 60미터 바다 아래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인터넷 동영상으로 여과없이 보도되었다. 용산 참사의 라이브로 보던 시청자들은 또 어떠한가? 그 어떤 영화보다 잔인한 현실이 우리 앞에 있고,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그런 현실에 초대받았다. 예외없이.

폭력은 존재에 대한 사물화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사물로서 보는 행동과 체제, 제도와 문화가 진정한 폭력의 원인이다. 인간이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되고, 사회가 경제성장만을 향해 치닫는 문화는, 폭력과 야만의 세계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권리와 생존권을 억압하면서 얻는 자신만의 이익과 영광이 폭력의 원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집단적인 허구와 무서운 사물화의 허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성공과 성장이 최선의 가치가 되고, 경제란 괴물이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파괴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볼프강 조프스키는 그의 저서 <폭력사회 Traktat “uber die Gewalt>에서 폭력은 어떻게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이 책에서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만연한 폭력에 대해 현상적인 대응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문명의 본질과 속성을 다면적으로 깊게 사유해서 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 즉 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현실이 더 폭력적인 사회에 살면서 영화의 선정성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성과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소외받는 약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영화보다 더 폭력적인 현실의 문제를 푸는 해법은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사회라야 그 가능성이 있다.

/ 김명석 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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