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란 무엇인가?
부(富)란 무엇인가?
  • 김명석 기자
  • 승인 2010.09.1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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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資本主義)사회란 문자 그대로 자본이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룸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본이란, 즉 돈이란 무엇이고 돈의 가치는 무엇인가?

예컨대, 여기 100억원을 소유한 부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가 가진 100억의 부란, 100억원만큼의 재화와 용역을 소비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이를 화폐의 구매력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돈이란 재화와 용역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다. 많은 돈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재화 또는 용역으로 교환할 수 있는 교환가치의 양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억원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100억만큼의 재화를 구매하거나 아니면 100억원만큼의 노동력을 부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100억원의 돈은 100억원의 노동력과 등가물이다.

그는 10억원이 넘는 람보르기니 스포츠 카를 몰 수도 있고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지중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수영장이 딸린 호화 별장을 짓고 운전사와 정원사를 둘 수 있다. 더 편한 생활을 즐기자면 하녀와 청지기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그가 가진 100억원의 부라는 것은 타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과연 얼마나 쓸모가 있는 것인지. 만약 지구상에 자신 외에, 타인이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100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어쩌면 300원이란 값을 치르고 구매할 수 있는 자판기 커피 한잔도 먹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커피를 한잔 먹기 위해선 이디오피아에서 커피 열매를 따는 일당 1천원도 안되는 배고픔에 굶주린 어린 아이들의 노동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는 일당 1천원짜리 이디오피아 노동력 1천만명을 부릴 수도 있지만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가 가진 100억원 전부를 지불하더라도 커피 열매조차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

100억원의 부는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타인이 있을 때라야 온전히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그 가치가 살아 있는 것이다. 그가 100억의 부를 누리려면 저택을 수리하는 배관공이나 정비사, 커피 열매를 따는 값싼 노동자들의 희생이 없다면 쓸모가 없다. 이 세상은 더불어 사는 사회다. 그의 부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그 가치에 응하는 타인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조선 말기부터 경주 교동에서 만석꾼을 했다는 최부자는 노블리스 오블리쥬라는 거창한 서양 용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만석꾼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문을 이어가며 대대로 몇가지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부자는 흉년이 들면 남의 땅을 사들이지 않았고, 식객을 정성껏 모셨으며 100리 가근방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했다. 그리고 절대 만석 이상의 재물을 탐하지 않았고, 만석 이상의 재산이 모이면 주변에 재물을 풀었다. 이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은 최부자의 재산이 늘어나길 원하는 아니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부자 가문은 자신들의 만석꾼이 유지되기 위해, 소작농이라는 타인의 노동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문 대대로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주엔 몸에 걸치고 있는 옷과 신발 장신구가 4억원이 넘는다는 명품녀가 세간의 화제를 뿌렸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아 생활하며 부의 대명사 패리스 힐튼이 부럽지 않다며 으시댔다. 많은 네티즌들이 증여세 포탈이라며 국세청 홈피에 세무조사를 종용했다. 아직 그녀의 발언에 대해 그 진위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명품녀 논란은 우리 시대 진정한 부란 어떤 의미인가 하는 화두를 던졌다.

나는 가진 자를 모독하거나, 그들의 부에 대한 의지를 힐난할 생각은 없다.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부라는 것은, 부의 가치는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 가치만큼의 효용대로 움직여줄 수 있는 타인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쟁환경속에서 못 가진 자 모두가 삶을 포기하고 상위 0.1%의 부자만 살아남는다면 그들 부의 가치는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재래시장의 거간꾼 박씨가 있기 때문에 100억의 부자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천민자본주의를 꾸짖고 천박한 졸부의식을 나무라며, 그들에게 더불어 사는 사회의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나만의 과욕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김명석 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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