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도 등소평도 키가 작다. 일본의 하시모토 수상도 우리 김영삼 대통령도 키가 큰 편이 아니다. 도리어 ‘키 큰 사람 싱겁다’는 것이다. 이런 속설과 통설은 이상주 선생한테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싱겁기는커녕 어떤 모임의 어떤 자리에서나 일에 활기와 재미와 흥을 선도한다. 이 선생이 낀 자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싱겁지가 않다.
나는 이상주 선생을 아주 자연적인 Organizer, Innovator, Decision-maker라고 본다. 그것은 이선생의 ‘마음이 크다’는 증거로 본다.……이 선생은 사람들과 일하기를 즐긴다. Institution building, Group building에 관심이 많고 그 일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고 조화시킬 줄 안다. 사람들에게 마음이 열려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언제나 이상(理想)을 향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혁신자의 자세가 있다. 현실 타협 보다는 이상으로의 모색에 관심이 있다. 미래에 마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마음이 작은 사람은 우유부단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의 결단은 마음이 큰 사람의 것이다.…(26쪽)’
선생님으로부터 이만한 칭찬(인정)을 받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좀처럼 제자들을 칭찬하지 않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자들로 하여금 계속 분발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도록 독려하시는 방법의 하나였던 같다. 운주 선생님은 여러 면에서 나의 멘토(mentor)이었다. 우리나라 교육학이 과학적 사고에 터하여 틀을 갖추도록 헌신하실 때, 옆에서 모시고 연구하는 자세를 익혔다. 선생님께서는 위의 글을 통해 당신께서 해 오신 한국교육의 선도적인 자세를 나에게 기대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으나, 위 글이 책으로 나왔을 때, 나는 울산대학교의 임기를 마치고 한림대학교에 있을 때였다. 하여간 이 글은 어쩌면 울산대학교 총장 임명장을 받으러 올 때의 나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1970년 3월 16일 울산공과대학의 개교, 제 1 대 정주영 이사장, 제 2 대 이후락 이사장, 제 3 대 정주영 이사장, 제 4 대 정몽준 이사장(1983년 취임)의 취임에 이르며 울산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 발전하는 현실감 있는 역사를 공부하였다. 아울러 울산대학교 발전방향에 대한 구상을 하였다. 이런 점이 운주 선생님께서 나를 관찰 해온 핵심이었던 것 같다. 밤늦도록 부족하지만 준비된 대로의 울산대학교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 세계고등교육의 역사와 앞으로의 추세, 우리나라 현재의 산학협동 체제의 발전방향과 울산이라는 산업도시에서의 특수한 위치 파악, 무엇보다도 강원대학교에서의 대학경영 경험을 어떻게 울산에 맞게 조정해야 할 것인지로 반은 흥분되고 반은 책임을 느끼며 하루를 부족하게 보내고 드디어 1988년 3월 16일 울산대학교 정몽준 이사장을 향해 내려갔다. 동료 K 교수의 말대로, 이상주는 ‘주어진 과업이 있고, 시간만 주어지면 그는 그걸 해낼 수 있다’고 지적해주었듯이, 성취동기를 충전시키고 의연하게 집을 나섰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울산대학교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범모 선생님은 금년 85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장, 충북대학교 총장, 한림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셨고, 지금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회장으로 1년에 한권씩의 연구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 정리=박해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