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울산대 총장 이상주 박사 이야기
전 울산대 총장 이상주 박사 이야기
  • 박문태 논설실장
  • 승인 2010.08.3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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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이 몰아쳐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고, 커다란 물보라가 하늘로 치솟는 커다란 감동(感動)은 ‘해방의 날, 광복절’의 라디오 방송이 나올 때이었을 것이다. 한편, 소슬 바람이 불어 호숫가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고, 그 물결에 흔들리는 호수 바닥의 조약돌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 작은 감동은 ‘몰랐던 이야기, 진솔한 자서전’의 글을 읽을 때일 것이다.

  감동을 일으키는 일이 어찌 조국의 해방과 고생 고생한 자수성가의 이야기뿐이겠는가? 한 폭의 그림일 수도 있고, 가야금 가락일 수도 있고, 한(限) 풀이 춤일 수도 있겠으나 비밀처럼 덮여져 있던 옛 이야기를 살짝 들추어보며 주인공의 기쁨과 슬픔에 감정이입(感情移入)되며 고개를 끄덕이는 집념(執念)의 이야기는 그 여운이 오래 간다. 어떤 집념을 갖게 되는 계기는 운명적일 때가 많다. 어느 거인,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커다란 한 사람의 운명적 계기를 관람객으로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젊은 나이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배경이 서로 다른 두 분의 대통령을 지근에서 모셔봤던 바로 천포(泉浦) 이상주(李相周) 박사의 이야기이다.

  천포 이상주 박사의 작게는 자신의 자아실현, 크게는 나라의 교육을 걱정하는 두 가지 집념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그 집념의 바탕에는 천포의 ‘유연(柔軟)’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자서전으로 전개된다. 집념과 유연성이 조화를 이루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부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유연함이 있어야 하고, 유연함은 집념의 뿌리가 강해야 유지될 수 있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상체계(思想體系)이다. 유연함은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부럽거나 편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구부러진 골목길을 이리로 돌아가고, 저리로 휘어지면서 부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유연하게 가야할 길을 한 단계씩 마무리 지을 때,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우리는 물결이 일어나는 감동, 희열을 느끼게 된다. 천포 이상주 박사의 삶은, 한참을 골목길에서 보내었다. 이제 조금 큰 길로 나와 활보하면서 가슴 벅찬 성취감으로 하늘을 우러러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런 모습의 뒤에 수줍어하며 숨어있는 사연들, 특히 울산의 대학교육의 발전에 비추어 조심스럽게 살펴보려고 한다.

  25년 전, 인구 80만에 하나의 종합대학만이 있었던 울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민주화를 외치며 혼란스럽던 시절에 혼신의 힘으로 오늘의 울산대학을 우뚝 세운 뒷이야기와 함께 울산을 제 2의 고향으로 아끼고 있는 이상주 박사의 지나온 추억, 애잔한 마음을 담담하게 펴 보이려고 한다. 이런 기록을 남기려는 계기는 천포 이상주 박사의 사적(私的)인 사진틀 짜기이고, 공적(公的)으로는 국록(國祿)을 오랫동안 받았던 경륜을 기록으로 남겨 후학들의 맨토(mentor)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아담한 사진틀은 금혼식이 올려지는 행사가 될 것이고, 맨토는 ‘부러지지 않는 집념’의 출판이 될 것이다.

  천포 이상주 박사는 1937년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태어났으나 해방 후 경상북도 월성군 서면 건천읍 천포리 1022에 정착하여 이곳을 출생지로 기록해왔다. 일본의 사꾸라야마 소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가 광복 후 부산으로 귀국하여 천포리에서 초등학교를 보냈다. ‘천포(泉浦)’라는 호가 그의 유년기에 대한 정감이 배어있는 추억에서 나왔다. 천포리에서 시작하는 성장과정의 일화는 순서를 바꾸어 뒤로 보류하고 울산의 독자들을 위해 울산대학교와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인연을 먼저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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