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와 ‘틀리다’
‘다르다’와 ‘틀리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8.1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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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different)와 ‘틀리다’(wrong)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른 말이다.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는 의미이다. 한편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릇되거나 어긋나다’는 의미이다. 의미가 서로 다른 두 단어를 우리는 혼동하여 사용하곤 한다.

가령, ‘이 집의 음식은 내가 예전에 먹었던 음식과는 맛이 전혀 틀려’, ‘부자들은 우리랑 생각이 틀려’, ‘번지수가 틀려’ 등과 같이 주로 ‘다르다’고 써야 할 곳에 ‘틀리다’고 쓰는 경향이 있다.

‘다르다’고 할 것을 ‘틀리다’고 쓰는 언어습관은 어떠한 이유에서 생겨난 것일까? 맞춤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그러한 언어습관이 너무나 일상적일 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 즉 ‘틀리다’고 할 것을 ‘다르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단지 맞춤법에 대한 혼동 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우리의 언어습관에도 일정한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우리의 의식 아래 잠재화된 그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다르다’는 단지 차이가 있다는 의미이므로 비교 대상들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眞), 어떤 것이 윤리적인 것인가(善) 혹은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美)라는 판단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다르다’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틀리다’는 ‘올바른’ 것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틀리다’는 말에는 이미 부정적인 가치평가가 포함되어 있다.

‘다르다’를 ‘틀리다’고 쓰는 언어습관, 거기에는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옳지 못한 것’, ‘도덕적이지 못한 것’ 혹은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잠재의식이 숨어있는 것이다.

‘다르다’고 표현해야 할 것을 ‘틀리다’고 표현하는 우리 내심에는 다음과 같은 의식이 작동하는 것 같다. 나와 다른 외계(外界)의 어떤 것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의 존재와 차이를 인식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현상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나와 다른 외계(外界)의 어떤 것을 평가한다. 그 평가기준에 따르면 외계(外界)의 현상은 저급하거나 혹은 이례적이다. 그것을 ‘틀리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의식과정에 문제가 있다.

바로 평가기준이 문제다. 그 평가기준은 ‘나의’ 사회화과정에서 체득되어지는데, 나와 전혀 다른 사회화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는 전혀 타당하지 않은 평가기준이 된다. 식사예절만 하더라도 어떤 사회냐에 따라 그 차이가 크다. 우리 사회가 가지는 식사예절로 인도나 무슬림의 식사 모습을 평가한다면 이는 ‘틀린’ 식사법이 될 것이다.

‘다르다’를 ‘틀리다’로 표현하는 우리의 언어습관에는 결국 나의 평가기준이 보편타당한 평가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나의 평가기준이 사회화과정에서 체득되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의 평가기준은 온전히 나의 자유의사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투영되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 경쟁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가치만이 정당한 평가기준으로 작동하게 되면 자본주의적 가치와 ‘다른’ 것들은 모두 ‘틀린’ 것들로 평가된다.

자본주의적 가치가 공동체의 가치로서 정당한가는 논의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개인에게 나날이 발생하는 여러 현상과 사건을 오로지 하나의 평가기준으로 재단하게 되면 그 개인의 삶은 풍요로워질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나와 다른 외계(外界)의 현상들에 대한 평가를 유보(留保)하는 것, 오히려 그 현상들에 담겨진 다른 사람들(他者)의 평가기준에 주목하는 것, 나아가 다른 사람들(他者)의 평가기준에 공감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타자(他者)와 ‘소통’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러한 ‘소통’은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서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다른’ 것을 단지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타자(他者)와 소통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첫 번째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소통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나아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 이태섭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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