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의 이유
과속의 이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0.08.0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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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다. 지난 주 내내 마무리하지 못한 원고들이 있었다. 출판사 사장님의 채근이 아니더라도 이제 게으름을 그만 부려야 했다. 사무실로 나섰다. 습관처럼 자동차에 올랐고, 멍하니 운전을 시작했다. 일요일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운전을 하다가 나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내 운전습관을 발견했다. 초록색 불이 꺼질까봐 조바심을 내며 속도를 높여 교차로를 통과하기도 했고, 앞 차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났으며, 그 간격이 벌어지면 뭔지 모를 불안함으로 속도를 높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텅 빈 도로에서 속도를 높이는데 방해가 되는 앞 차량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비록 원고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서둘러 사무실에 가야 할 정도로 바쁘지 않았다. 서둘러 가야한다는 의식이 작동해서 조급했던 것은 더욱 아니다. 어떤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무엇일까?

속도(速度)를 국어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물체가 나아가거나 일이 진행되는 빠르기’ 속도를 높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의 진행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목표에 대한 도달이 더 빠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속도란 경쟁 혹은 투쟁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하나의 표지가 된다. 사회적 변화속도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이 성공하고,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된다. 남녀 사이의 만남도 속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첫 만남에서 첫 인상은 그 남녀 사이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첫 인상이란 상대방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 표정과 풍채만으로 속도감 있게 상대를 평가하여 받은 느낌을 말하는 것이므로 역시 속도의 범주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학생들이 늘 치러야 하는 시험도 역시 속도를 높이기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가 묻고자 하는 바를 속도감 있게 파악하여 그 진위를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속도를 높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패배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서 속도를 높이고 있지는 지도 모른다. 경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우리는 스스로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려가야 한다. 과속이라는 내 운전습관은 살아남으려는 관성의 법칙이 작동한 것일 수도 있다.

고속성장, 다이나믹 코리아, 한 때 우리 사회를 관통하던 관념들이다. 공동체의 가치로서 그 정당성이 있느냐는 차치하고, ‘고속’이라는 가치가 개인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였는지는 되돌아보아야 한다. 속도를 높여 달려가야 할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곳이 내가 진정하게 바라는 곳인지 아니면 내가 바라는 곳이기를 강요받은 곳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필자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경쟁 사회에서 그 사회적 변화속도에 조응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그 삶이 온전할 수 있는가? ‘고속’사회에서 ‘저속’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고속’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가장 큰 폐해는 개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앞만 보고 급히 달려가야 하는 삶 속에는 길가에 핀 들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물론, 경쟁에 등 떠밀려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길가에 핀 들꽃의 아름다움이란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가치를 자본주의적 성취에 두지 않는다면,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서정을 만끽하는 것이 행복일 수 있다.

온통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고, 무한 경쟁을 주문하더라도 자본주의적 성취는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풍요로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우리 삶을 새롭게 구성하게 될 것이다.

‘저속’으로 살아가는 노력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함께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고속도를 제한하는 것처럼 경쟁을 완화하는 사회적 장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교육정책, 사회정책, 노동정책, 경제정책 등 모든 부문에서 삶의 풍요를 위해 경쟁을 완화하여야 한다. 개인이 감내할 수 있는 속도를 벗어난 경쟁은 개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공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태섭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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