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질병·기아와 평생 보낸 테레사 수녀
“사랑은 한 소년이 기부한 사흘분의 설탕”
가난·질병·기아와 평생 보낸 테레사 수녀
“사랑은 한 소년이 기부한 사흘분의 설탕”
  • 이상문 기자
  • 승인 2010.04.26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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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커타를 상징하는 사람들 중 타고르 외에 또 한 사람이 떠오른다. 마더테레사 수녀. 열아홉의 나이에 수녀가 되면서 인도의 다르질링에 있는 학교의 교사로 파견되면서 그녀는 인도와 숙명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그 후 캘커타의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만 자신의 일생을 바칠 환경과 맞닥뜨리고 만다. 테레사 수녀는 캘커타 빈민촌에 있는 ‘사랑의 집’에 살면서 가난과 질병, 그리고 기아 속에서 죽어가는 인도인과 평생을 함께 보냈다.

하루는 영국의 한 여기자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그녀에게 물었다. “사랑이란 캘커타의 한 소년이 들고 온 사흘 분의 설탕입니다”라고 테레사 수녀가 대답했다. 어느날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있었고, 캘커타의 모든 시민들이 그 소문을 들었다.

그날 저녁 한 소년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오늘부터 사흘 동안 저는 사탕을 먹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먹지 않은 그 사흘 분의 사탕을 제게 주십시오.” 사흘 후 이 소년은 자신이 아낀 사흘 분의 설탕을 들고 사랑의 집에 찾아 왔다.

캘커타의 모든 시민이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남에게 걸식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고통의 행려병자들에게 자기 몫의 설탕을 먹지 않고 가져 온 어린 소년 한 사람 외에 설탕을 기부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가 강조한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사랑. 작은 일에도 비분강개하며 정의를 세우고자 하고, 옆집 개가 고뿔에 걸려도 호들갑스럽게 침소봉대하며 박애를 강조하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실천할 수 있고, 타인을 위해 작은 희생을 할 수 있는 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캘커타의 유명한 깔리 사원 옆에는 마더 테레사 미션에서 운영하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있다. 이곳은 1952년에 문을 열었다. 어느 날 그녀가 거처하는 수녀원 가까이에 있는 병원 앞 길가에서 한 남자가 죽어가고 있었다. 병원에 부탁해 보았지만 환자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약방에 가서 약을 사 가지고 돌아와 보니 그는 죽어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마더테레사 수녀는 “개나 고양이도 이처럼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환자를 받아주지 않은 병원 사람들은 사람보다도 자기의 애완동물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면서 말했다. 그녀는 곧바로 경찰로 찾아가 이런 비참한 실정을 호소했고, 그 호소에 공감한 경찰과 캘커타 시의 배려로 문을 연 것이 바로 ‘죽음을 기다리는 집’인 것이다.

처음에 이곳에 온 행려병자들은 대부분 죽었다. 이름 그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었다. 그러나 차츰 그곳의 수녀들과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살아남는 자들의 숫자가 사망자의 수를 넘어섰다. 지금까지 그곳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쳐갔다.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이나 새로운 생명을 얻어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이나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그동안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대접과 존중을 그곳에서 충분히 받았다는 점이다.

하마터면 더러운 도랑에 코를 박고 싸늘히 식어갔을 지도 모르는 악취 풍기는 몸을 깨끗이 씻기고 구완하는 봉사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들 중 일부는 행복한 죽음을 맞았고 또 일부는 회복돼 다시 세상의 빛 속으로 걸어 나간 것이다.

1997년 마더 테레사 수녀가 사망하자, 그녀의 시신이 안치된 성토마스 성당 밖에는 평소 그녀가 돌보던 거지들이 대거 몰려왔다. 그들은 성당 측에서 그들의 조문을 허락해 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그 허락은 결국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겨울철에는 추위를 막을 옷을 주신 수녀님에게 마지막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성당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만약 테레사 수녀가 살아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마더 테레사 수녀는 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가난한 도시에서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두 명이나 나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학과 문명은 멀리 있고 지독한 가난과,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 허울 좋은 종교만 득실거리는 땅에서 피어난 예술혼과 박애는 그 어떤 것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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