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원래 한 몸입니다. 항공모함이 움직일 때 전투함과 잠수함, 호위함이 함께 ‘전단’을 구성해 다니듯,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대한민국 전단’으로 세계를 누벼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한 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처음으로 함께 준비한 올 신년인사회에서,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상생을 통해 경쟁력 있는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경제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어 내자고 했다. 아울러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시작으로 노동개혁도 확실하게 추진하겠노라고 약속했다.
특히 무엇보다도 “올해 더 과감하게 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극복하기 위한 동력으로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과제 중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꼭 집은 것이다. 대통령은 기업인들과 만날 때마다, “우리 기업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며 뛰기가 어렵다.”면서 과감한 규제 혁파를 약속했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일선 부처의 강압적 자세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으니 공장 가동을 중단하라.” 올 들어 대규모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은 미세먼지 저감 차원에서 몇 차례 조업시간을 줄이라는 공문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과태료를 내고 공장을 계속 돌렸다. 1분 1초의 시간이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기업에서는 공장을 돌려 생산효율을 높이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런 일방통행 지시로는 안 된다. 미세먼지의 심각성은 십분 이해하나, 기업은 느닷없는 규제로 막심한 피해를 보게 된다.
연초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을 둘러본 이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화상 통화만으로 환자 상태를 진단하는 등 국내에서는 규제에 가로막혀 엄두도 내지 못할 첨단기술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관료주의, 획일주의에서 벗어나 당국과 기업이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기업의 실정에 맞는 정책을 논의하자. 지금은 경제위기 돌파를 위해 현장과의 소통을 더욱 늘려야 한다. 또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제반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공개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당면한 복합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재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러려면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과 혁신 기반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중소기업은 성장의 과실을 공정하게 누리지 못했다. 갈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커지고 있고, 일자리 미스매치도 큰 숙제다. 이렇듯 양극화 해소가 급선무다. 또한, 중소기업의 협업 활성화가 필요하다. 자금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은 협동조합을 통한 협업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핵심 사업인 공동 판매가 담합으로 규정돼 활성화가 어렵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를 귀담아듣자. 전쟁이나 팬데믹과 같은 글로벌 환경 변화에 따른 경제위기에서는 회복이 가능하지만, 경제 체질 결함에 따른 저성장 고착화는 극복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명령형 규제에서 소통형 규제로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이제는 획일적 감축에서 벗어나 맞춤형 규제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관계는 갑을(甲乙)이 아닌 동반자적 관계,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맞손을 잡아줘야 한다.
중소기업계는 올해를 전망하는 사자성어로 ‘금석위개(金石爲開)’를 선정했다. 어떠한 어려움도 굳은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는 당찬 의미다. 울산의 중소기업들은 더욱 힘겹다. 태생적으로 울산 산업생태계가 대기업 중심으로 꾸려져 있기에. 올해 세계경제 상황은 더욱 어려울 것이나, 모든 경제 주체가 하나가 되어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한국경제의 새로운 미래를 힘차게 맞이할 수 있다. 이제라도 중소기업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자!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RUPI사업단장, 4차산업혁명 U포럼 위원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