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향기] ‘파티시에’로 시작한 인생 후반전
[아침향기] ‘파티시에’로 시작한 인생 후반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1.3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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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에 난생처음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만든 빵에 음료를 곁들여 판매하는 카페를 시작했다. 평생 교육업과 부동산업에 종사했던 터라 제빵은 생소하기 그지없는 분야였고,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자신할 수 없었다. 50대 중반이면 누구나 은퇴 후 여행이나 골프, 낚시 등 여유롭고 편안한 여생을 꿈꾸며 달콤한 계획을 세워나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그렇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세상을 붙잡기 시작할 무렵부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어디론가 나다니는 것이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이러한 꿈들이 상상 속의 꿈동산일 뿐, 정작 여생에 대한 내 꿈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유튜브를 독학해 채널을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가 올리면서 유튜브 알고리즘을 알게 됐다. 또한, 편집과 대화 기술 등 많은 능력이 개선되고 향상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또 다른 인생의 묘미를 느꼈다. 하지만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편집하는 일들이 너무 고독한 작업이라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온라인, 메타버스, 플랫폼 등 가상 공간 활동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람 냄새가 그립고, 하하 호호 웃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를 열었다. 코로나에 대한 인식이 점점 가벼워지면서 마스크를 벗게 된 시점이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힘들게 익힌 베이커리 기술을 바로 카페에 적용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으며, 끝없는 실수와 실패의 연속을 감내해야 했다. 환경과 습도, 온도에 따라 섬세하게 발효 정도가 달라지는 반죽의 상태를 끊임없이 관찰해야 했고, 일관된 모양과 사이즈로 구워져야 하는 빵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일 밤낮으로 경험하며 이겨내야 했다.

인력난이 큰 사회문제인 요즈음, 베이커리 종사자를 구하기도 힘든 세상이라 모든 일을 혼자 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종류의 빵을 다 구워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제빵 기기에도 적용되어 모든 제빵 기계가 최첨단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이 모든 어려운 과정을 가능케 한 중요한 요소다. 베이커리 카페 문을 열기 한 시간 전에 출근하여 도우 컨디셔너에 전날 프로그래밍해 둔 대로 발효된 빵들(성형반죽)을 예열된 오븐에 굽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새벽에 출근해서 빵을 반죽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그런 힘든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큰 지지자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무엇이든 시작해 볼 용기만 있으면 된다.

모든 결실은 겪어야 할 단계들을 혹독히 겪은 다음에 따라온다. 나는 이러한 단계들을 힘겹지만 기꺼이 이겨냈고, 지금도 매일매일 기쁘게 겪는 중이다. 쪽파 프레첼을 맛보기 위해 포항에서 일부러 찾아오신 손님이 내게는 빵을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내가 만든 식빵이 “최고로 맛있다” 하시며 시집간 딸들에게 줄 식빵을 주문하러 오신 어머니의 마음이 내게는 빵을 만드는 보람이 되었다. 아침부터 분초를 다투며 장만한 빵들을 모두 구워내고, 다음날 제공할 빵들을 성형하며, 보충이 필요한 반죽을 만들기 위해 각종 재료를 계량해서 반죽기에 돌린다. 그리고 급냉고에서 냉동시킨 후 냉동고로 옮겨 넣는 과정을 마치면 하루가 저문다.

이러한 과정은 그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던 나를 꿀잠 속으로 이끈다. ‘파티시에’는 몸을 움직이는 직업이라 따로 헬스클럽에 가지 않아도 체중조절이 되고 팔과 다리, 허리의 근육이 강화된다.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파티시에로서 일한다는 것은 적당한 운동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일은 즐거운 창작활동이 될 수 있어 50대 이후의 직업으로 아주 좋은 점이 많다. 제빵은 원시시대 자급자족하던 시대의 일과를 방불케 한다. 내일 먹을 빵을 오늘 준비하지 않으면 내일은 고객들이 빵을 굶는다. 이들을 위해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제빵실로 향한다.

이현정 LLL Bakery Cafe ㈜삼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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