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향기]신이 내린 수, ‘영(零)’
[아침향기]신이 내린 수, ‘영(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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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단풍잎은 어떻게 셀 수 있을까? 일단 단풍잎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단풍잎은 하나둘 떨어지다가, 어느 날 마지막 잎까지 모두 바닥에 떨어지게 된다. 이론적으로 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것보다 이 상태에서 세는 게 훨씬 더 쉽다. 이런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가는 초보적인 큰 수의 계산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바로 이 숫자 ‘영(0, zero)’의 등장 이후다. 철학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무(無)’라 하고, 수학에서는 ‘영(零)’이라 한다. 그런데 영은 영원히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영의 자리에 지금 없다는 것은 얼마 후에는 그 자리에 다른 숫자가 온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바다에는 코끼리가 없다.”라는 무의 표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인도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브라마굽타가 영의 개념을 도입한 이후, 가장 작은 수의 가치를 가지는 영이 가장 큰 수를 만들었고, 그 어떤 큰 수도 기본숫자 뒤에 영만 붙이면 태양까지, 나아가 무한대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산업혁명, 첨단의학, 전기와 컴퓨터, 전쟁 무기 등 모든 분야에서 영은 그 능력을 지금까지 유감없이 발휘해 왔다.

겨울이 다가오면 새하얀 대평원처럼 순수함으로 가득 찬 아이들이 수(數)를 배우러 필자의 정원으로 찾아온다. 가슴속에 수를 가득 채운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신입생들이 다시 메운다. 수년간에 걸쳐, 내가 가진 수의 에너지를 그들에게 모두 다 충전해준다. 솔루션을 향해가는 과정에 크고 작은 많은 실수가 쌓이면서 “노력이 게으른 재능을 이길 수 있다.”는 증명서가 수없이 내 마음속에서 발급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수의 시간을 포용하는 따뜻한 인내의 공간은 어린 미래의 날개가 돋는 부화장이며, 그들의 꿈은 마침내 풍등처럼 드높이 날아오른다. 백지로 다가온 아이들은 신(神)의 수인 영을 정복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 고비마다 너무도 중요한 무리수(π, 등)까지 최종적으로 완성하고 하산한다.

내 임무는 잠재적인 신동들에게 신들의 수를 채워주고, 풍요의 시간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단순한 수의 인식과 복잡한 수의 이해는 삶을 살아가는 데 강력한 출력을 낸다. 신동들이 왔을 때 현재 가치는 미약해 보이나, 훗날 막강한 파워를 가진 영이 될지, 아니면 1이 될지, 2가 될지 쉽게 결론 낼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수가 윤곽을 드러낸다. 본인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수와 부모가 바라는 수, 담당교사가 분석한 수가 다를 수 있다. 비록 같은 수라 하더라도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커다란 차이가 있다.

1,000,000에서 0은 모양은 같은 수지만 각 위치가 다르기에 그 값은 전혀 다른 수다. 그러므로 위 여섯 개의 영이 마주하게 되는 인생에서의 난제가 모두 평등하고 공평한 난이도일 수는 없다. 이것은 수를 계산적으로 잘 다뤄야 하고, 철학적으로도 심도 있는 이해력이 필요한 이유다. 천 년 전의 영이나 현재의 영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러한 항상성과 불변성이 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자 정의이며, 그 힘으로 우주를 지배한다.

수와 수학은 생명체와 무생명체를 연결하는 비밀의 문을 여는 규칙성이 가득한 열쇠다. 이곳에서 영은 아주 극미세하게 작은 수와 표현이 어려울 정도의 천문학적 초대형수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고 방대하다. 무(無)를 유(有)로 보는 초현실적 정신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로 가장 큰 수를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롭다. 수는 인류 문명이라는 거대한 생명체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산소와 같다. 골프도 야구도, 미지의 세계로 날아가는 우주선도 모두 응용된 수학의 절정이다. 그러므로 수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역량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우주의 질서에 반하는 행동이다.

어떤 수학 난제를 인류가 푸는 데 2천 년이나 걸렸다. 그것도 21세 젊은 청년이 해결했다. 우리가 신의 정원에 살고 있다는 게 더욱더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누구나 하나의 천재성은 가지고 태어난다. 문제의 핵심은 누구에게나 그 천재성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는 거다. 바로 그 순간에 잠들어 있지 않아야 한다.

송숙희 언양 루트수학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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