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진으로 오세요!
방어진으로 오세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11.0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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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십여 분 남짓 걸어가면 대왕암공원 입구가 나온다. 공원 입구의 원형 상가는 이전에 난삽했던 식당과 잡화점의 기억에 비하면 깔끔한 편이다. 하지만 시장통 상가 사이사이 노점에서 팔던 번데기를 컵에 받아 한 개씩 입에 넣고 터져 나오는 짭조름한 단백질의 맛을 더는 볼 수 없기에 마냥 그리워진다. 미화된 과거는 이토록 아름다운가 보다.

공원 한편에 이제는 커다란 용 모양 미끄럼틀이 어린이 놀이시설로 자리 잡고 있다. 어스름한 저녁 시간에 어린이 대신 다 큰 어른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놀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 다섯 살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법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어둑해진 대왕암공원의 소나무 숲을 농도 짙은 흑백계조(黑白階調) 사진으로 감상한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숲 끝에 다른 채도(彩度)와 명도(明度)로 존재감이 뚜렷한 등대가 서 있다. 문득 예술적 소양이 풍부했으면 하는 소원이 추가된다. 이런 환상적인 공간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예술을 추구하는 무모함도 아름답게 보일 것 같은 치기가 불뚝 솟아오른다.

어처구니없는 소원을 뒤로하고 넓게 펼쳐지는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는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인다. 이십수 년 전 첫인상과 그리 다르지 않은 설렘이 두근거림으로 느껴진다. 두근두근하는 가슴을 조심스럽게 부여안고 오른쪽 둘레길로 접어든다. 이내 마주하는 대왕암 터줏대감 고양이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다. 살집도 제법 있는 친구가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거리를 둔 채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괜스레 주머니를 뒤적이지만 기대치를 충족할 그 무엇이 없음을 서로가 알아챈다. 고양이는 무심한 동작으로 천천히 다른 고객을 물색하며 관심을 거두고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산책하는 나를 서운해한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옛 방어진중학교(옛 울산교육연수원) 교정이 나타난다. 비슷한 모양의 학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낸 아련함이 스쳐 지나가는 장소이다. 올해 초 울산시립미술관과 공동으로 마련한 작품전 ‘찬란한 날들’이 펼쳐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의미 있는 공간 활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전시회였다. 원형을 훼손하지 않은 리모델링과 공간 활용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교육연수원을 지나면 잘 꾸며진 캠핑장이 시작된다. 이곳을 지날 때면 각양각색의 텐트들과 캠핑 시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캠핑장비 박람회를 참관하는 기분이 끝날 때 즈음 산책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의 하나인 ‘감탄과 탄식의 언덕’이 나타난다. 명칭이 정확하게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기에 내 마음대로 붙여본 나만의 명칭이다. 이곳은 계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가도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한 번으로 초토화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넓게 펼쳐진 언덕 사이사이에 사진틀이 놓여 있다. 누구라도 이곳에서 인생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언덕이 끝나면 자연적으로 조성된 동네가 시작된다. 낮은 담장으로 이어진 골목길은 동시와 어울리는 그림으로 채색되어 있다. ‘누가 이렇게 기분 좋은 그림을 그려주었을까?’란 제목으로 소설을 써보며 걸어간다. 파도 소리가 거문고 음률로 들린다는 구멍 숭숭 뚫린 바위로 이루어진 슬도를 지나 방어진항 북카페 ‘다온’에 들어선다. ‘점’자, ‘식’자 쓰시는 누님이 점장으로 계시는 곳이다.

지나온 세월만큼 넉넉한 미소로 반겨주시는 점식 누님의 ‘다온’은 지역을 지키기 위해 지역 주민이 마음을 합쳐 만든 사회공동체의 전진기지이다. 여러 사연이 얽힌 곳이지만 협동조합 가운데 조합원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따뜻함이 오고 간다. 이제는 나도 방어진의 한 부분이 되었음에 안도함과 감사함을 갖는 시간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방어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방어진에서 닳고 닳아가면서 몸도 마음도 둥글둥글해졌음에 감사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모두를 풍광 좋고 사람 좋은 방어진으로 초대하려 한다. 환영합니다! 당신들의 각진 세상에 동그라미가 되어줄 방어진으로!

신언환 울산과학대 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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