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거는 삼국사기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라의 유명한 화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솔거가 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에 황룡사 절이 지어진다. 어느 날 솔거가 황룡사에 갔는데 한쪽 벽에 탱화가 그려져 있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스님에게 물었더니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말씀하시길, 때가 되면 화공(?工)이 찾아와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하여 그냥 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솔거는 아주 오래된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후에 사람들은 이 그림을 ‘노송도(老松圖)’라 불렀다. 문제는 그림이 완성된 이듬해 봄부터 나타난다.
마치 살아있는 듯 그려진 소나무에 새들이 앉으려고 날아왔다가 자꾸 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만큼 생동감 있는 소나무 그림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1238년 몽고의 침략으로 황룡사 전체가 불타서 없어져 너무 안타깝다. 그때 솔거의 노송도도 같이 소실됐다. 솔거의 그림에 등장한 소나무는 우리나라 고유 수종인 금강송이다. 금강송은 금강산을 비롯하여 태백산맥 줄기인 강원도와 경북 북부 산간지역에서 자란다. 재질이 단단하여 예부터 궁궐의 건축자재로 사용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최근엔 ‘현대판 솔거’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당산 임기만 화백이 나타나 화제가 되었다. 임기만 화백은 2005년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참새 떼가 화실의 창틈으로 날아 들어와 소나무 그림에 부딪히는 장면이 소개되면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AP통신, 신화통신, 로이터통신 등 해외 유명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고 소나무 그림의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임 화백의 소나무 작품을 매입해 소장함으로써 작품성을 공인받았고, 아트테라피(art therapy·미술치료)를 목적으로 일본, 스리랑카 등 해외에서 직접 구매가 이루어지면서 스리랑카 왕실에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 이처럼 임 화백의 작품세계는 예술의 경지를 넘어 정서적 평온함과 힐링을 주는 아트테라피 작품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소나무를 참 좋아한다. 소나무 숲을 걷노라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소나무 숲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송풍(松風) 덕분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전국 산야(山野)에서 자라는 상록 침엽수이다. 전국 각처에서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속리산 입구의 보은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은 세조가 행차할 때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다고 해서 정이품 벼슬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제180호), 합천 화양리 소나무(제289호), 우산을 펼쳐 놓은 모양으로 석송령이라고 불리는 경북 예천 소나무(제294호) 등이 있다.
소나무의 ‘솔’은 으뜸을 의미하는 ‘수리’가 ‘솔’로 변화되었다고 추정한다. 옛날 진시황제가 소나무 덕에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어 공작의 벼슬을 주어 나무(木) 공작(公)이 되었는데, 이 두 글자가 합쳐서 송(松)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어 ‘송’에서 솔이 유래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벼슬까지 얻은 귀한 나무이다 보니 소나무에서 들리는 소리의 표현도 썩 멋지다.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맑게 들려오는 소리는 송운(松韻), 마치 퉁소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송뢰(松?), 그리고 바닷가 파도 소리처럼 들린다고 송도(松濤)라고도 한다.
깊은 산 소나무 아래에선 누구에게나 인기 높고 값비싼 송이버섯이 난다. 그래서 송이밭 위치는 자식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송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소나무 뿌리에서 외생근균과 공생하여 돋아난 복령은 값비싼 약재로 쓰인다. 이러니 소나무가 인기가 좋을 수밖에. 옛날엔 ‘일능이표삼송’이라 했다. 즉, 버섯 중에선 능이버섯이 최고이고, 다음이 표고버섯, 그다음이 송이버섯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송이버섯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버섯 향은 능이가 가장 강하다. 오리백숙이나 삼계탕, 버섯전골을 먹어보면 그 진가가 드러난다. 그래도 나는 소나무 숲 산책길에서 만나는 송풍과 송운이 참 좋다.
이동구 독자위원장, RUPI사업단장 4차산업혁명 U포럼 위원장,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