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긷는 마음으로
물을 긷는 마음으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5.3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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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마을에 ‘수도’가 들어왔다. 그전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 양동이에 이고 와서는, 부엌에 있는 커다란 물독에 물을 채우는 일은 아주 중요한 집안일의 하나였다.

인구수에 비해 우물이 턱없이 부족했던 우리 동네는 먹는 물 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머니가 한 번은 밤이 이슥한 시간에 물을 푸러 갔다가 어디선가 “캥캥”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여우 한 마리가 가까이 와 있었다고 한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모르겠더라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뇌리에 남아있을 정도로 물에 대한 애환이 참 많았다.

물이 귀한 터라 쌀뜨물 같은 구정물은 모두 모아 소죽을 끓이는 데 썼다. 어디 그뿐인가. 걸레 씻은 물도 그냥 버리지 않고 마당에 휘익 뿌려 먼지를 가라앉힌 다음 비질을 했다.

그 무렵, ‘작두샘’을 가진 집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붓고 힘차게 아래위로 저으면 많은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지금은 수도꼭지만 틀면 언제든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런데, 기후변화로 지구촌 곳곳이 심각한 가뭄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 아니, 어쩌면 지구를 괴롭힌 우리 인간들의 잘못이 ‘부메랑’이 되어 경고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예로 터키의 농업 중심지에 거대한 ‘함몰 구멍’이 연이어 생겨나고 있는데, 그 원인이 극심한 가뭄에다 관개용 지하수를 오래전부터 계속 퍼 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멕시코시티 주민들은 당나귀를 끌고 먹을 물을 구해 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고 한다. 또 남미 온두라스는 물이 없어 농사가 어려워졌고, 그로 인한 생활고로 사람들이 고국을 떠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가뭄 피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수확을 앞둔 양파 잎은 마치 낙엽처럼 말라가고 마늘과 매실, 복숭아, 살구, 자두도 흉작 걱정에 농민들의 이마 주름살이 더 늘어나고 있다.

나는 3년째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분양해준, 쪽빛 주전 바다가 보이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이곳 또한 가뭄을 피해 갈 수는 없는가 보다. 작년만 해도 물은 언제든지 쓸 수 있었는데, 올봄부터는 주말에만 물을 쓸 수 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보살펴도 싱그러움을 잃어 가고 있어서 한숨이 늘어난다. 고작 10평 남짓한 텃밭을 가꾸는 내 마음도 이러한데, 오직 하늘이 내리는 비에만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 천둥지기 농부들의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 가고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일상생활 속의 절수 방안에 어떤 것이 있을까? 나의 경우, 오래전부터 쌀뜨물은 전부 재사용하고 있다. 윗물은 반려식물 율마에 주는데, 그 덕분에 영양제를 따로 주지 않아도 사철 내내 싱그러운 연둣빛을 선물해준다. 가라앉은 쌀뜨물은 식초와 밀가루를 조금 섞어서 주방세제로 이용한다. 물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는 것 같다. 그 외에도 달걀 삶은 물과 채소를 삶거나 데친 물도 식혀서 화초에 주면 좋은 거름이 되고 절수 효과도 볼 수 있다.

설거지할 때 물을 받아서 사용하고, 샤워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양치질할 때 컵을 사용하는 것, 빨래는 최대한 모아서 하는 것은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쓰면 실천 가능한 일이 아닐까? 물은 생명의 본질이자 신앙이요, 살아있는 자연의 경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옛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던 마음으로 한 방울의 물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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