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에서는 현재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분리(검수완박)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을 두고 몸싸움은 물론이고 합법적 대결이 격해지고 있다.
법 개정에 반발하는 야당은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로 맞서지만 이를 무력화시키는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회기 쪼개기)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거나 표결을 지연시키기 위해 장시간 발언으로 시간을 끄는 의회 운영 절차의 한 형태. 입법관행상 미국 연방 상원에서 소수파(때로는 1인의 상원의원)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의회 전술이다.
필리버스터는 원래 16세기 국가가 공인한 해적선을 가리켰으며, 19세기 중반 라틴아메리카 폭동에 참가했던 미국인들과 같이 변칙적인 군사모험가를 지칭하는 말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무제한 토론이 도입됐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최장 100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으며 발언은 의원 한 명당 1회씩 주어진다. 단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의제와 관련이 없는 발언은 금지된다. 본인이 발언을 멈추거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있으면 토론은 중단된다. 무제한 토론이 끝나면 해당 안건은 즉시 표결한다.
이에 맞서는 살라미 전술은 협상에서 한꺼번에 포괄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쟁점 이슈를 부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각각에 대한 대가를 받아냄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이다.
결국 입법부의 일방적인 법의 제·개정을 막기 위한 방법과 이에 대응하는 방법이 맞서는 격이지만 종국에는 다수당의 횡포를 막을 길은 없다는 게 현실이다.
야당은 여당이 개정을 강행하는 검찰청법 개정에 맞서 지난 27일 필리버스터에 들어갔지만 결국 자정에 회기 종료로 자동 종료됐다.
국회법 제106조의2 8항은 무제한 토론 중 국회 회기가 끝난 경우 토론 종결의 선포가 있었던 것으로 간주해 바로 다음 임시국회 회기가 시작하자마자 최우선으로 표결에 부친다.
다만 최소 3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국회법 제5조 1항에서 임시국회의 소집요구 시에는 최소 3일 전에 공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30일 새로운 임시국회가 열리면, 전날 무제한 토론이 종결된 검찰청법이 최우선 의결 대상에 오르고 171석을 가진 민주당의 의도대로 법안 통과가 확실시된다.
30일 본회의에서도 전날과 같은 절차가 반복되고 검찰청법 개정안 통과 후 회기를 30일 당일 종료하는 것으로 변경해 의결한 뒤 형사소송법이 상정되면 야당이 해당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지만 토론 역시 당일 밤 12시면 자동으로 종료된다.
이후 여당은 다시 3일의 공고 기간을 사이에 두고 다음달 3일 새로운 임시국회의 소집을 통해 새 임시국회의 개회와 함께 본회의가 열리고 형소법 개정안이 최우선 표결 대상이 돼서 의결될 전망이다.
이처럼 다수당이 법 개정을 강행하려는 의지 하에서는 야당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여당이 엄청난 의석을 확보한 21대 국회에서는 국민들의 의사나 야당의 반대와 상관없이 어떠한 법률의 재개정을 막을 수 없다. 소위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극단적인 다수당이 탄생하지 않도록 하는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과 국회의 다당제를 통해 견제와 균형, 협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주복 편집이사·경영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