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19혁명, 그때 울산은
1960년 4·19혁명, 그때 울산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4.1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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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4·19혁명 제62주년이 되는 해이다. 울산의 4·19 하면 대부분 당시 서울 경무대 앞 시위에서 경찰 총격으로 순국한 한양대 공대 학생 정임석 열사를 떠올린다. 정임석 열사의 묘는 4·19혁명 희생자 중 유일하게 국립묘지가 아닌 울산시 북구 천곡동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1960년 4·19혁명 때 울산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일까? 당시 신문을 통해 울산의 4·19혁명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타오른 4·19혁명의 열기가 울산에서는 조금 늦은 4월 26일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다른 지역과 달리 시위 주도 세력인 대학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울산에서 일어난 시위는 모두 중·고교생들이 중심이 되었다.

남구 달동의 울산농고(현 울산공고) 학생 150여 명(일설에는 300명)이 아침 8시 정각 울산 신시장에서 출발, ‘이승만 대통령 물러가라’ ‘고문 경관 체포하라’는 플래카드와 ‘동포여 일어나라’ ‘협잡선거 물리치라’ ‘구속된 학생을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스크럼을 짜고 울산읍내를 행진했다. 이에 울산읍민 등 3천여 명이 학생들과 같이 시내를 행진했다. 울산군청과 울산경찰서(현 중구 울산 동헌과 울산시립미술관)에 도착한 시위대는 군수와 서장에게 “앞으로 공무원이 선거에 간섭할 것인가”라며 강력한 답변을 요구했고, 군수와 서장은 시위 군중 앞에서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시위 군중은 시내를 행진하면서 ‘자유당’ ‘반공청년단’ ‘서울신문 울산지국’ 등의 간판을 떼어버리고 12시경 해산했다. 이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다음날인 27일에는 언양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이날은 언양 장날이었다. 언양농업중·고생(현 언양중, 언양고) 600여 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경찰은 학생 살상을 책임지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면민 3천여 명이 합세한 시위대 앞에는 면장, 면서기, 경찰지서 주임과 순경들이 앞장을 서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공무원은 반성하자.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는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를 행진했다.

28일에는 서울에서 순국한 정임석 열사의 유해가 울산에 도착했다. 울산에는 4·19혁명 이후 귀성 중이던 재경(在京) 울산 유학생들이 ‘시국선무반’을 조직해 민심 안정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계엄사령부에서는 1개 소대를 동원해 울산, 방어진, 언양, 강동 등지를 순찰·경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어진, 언양, 하상, 농소, 강동, 장생포 등지에서는 면사무소, 지서, 자유당 관련 시설, 반공청년단장 집 등에 대한 파괴·보복행위와 더불어 시위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다. 이날 경찰지서를 포함해서 총 47동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29일에는 남창중학교 서생분교 학생 약 200명이 시위·행진을 벌였다.

5월 3일 울산농고 학생 670여 명이 오전 10시 수업을 중지하고 다시 시위에 나섰다. ‘썩은 국회 물러가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울산 시가지를 행진했다. 이때 울산여상, 울산제일중, 울산중, 울산고 학생 등 2천여 명도 합류했다. 학생들은 시위 도중 울산읍을 무대 삼아 날뛰던 소매치기와 깡패 5명을 잡아 경찰에 인계했다. 이들은 ‘정치깡패’로 알려진 자들이었다.

한편 울산농고 학생들은 시위 후 3·15부정선거에 가담한 교감, 교사 등의 사퇴를 요구하며 4일부터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3·15부정선거를 간접적으로 도운 데 따른 도의적 책임을 지고 전원 물러나기로 결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창에서도 이날 3일 장날을 맞아 남창중·고생 1천500여 명이 장꾼 3천여 명이 모인 장터에서 3·15부정선거 규탄시위·행진을 감행했다.

울산에서의 4·19혁명 열기는 5월 13일 오전 10시 반 정임석 열사의 군민장이 고향인 농소 천곡리에서 엄숙히 거행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장례식에는 울산군민 3천여 명이 조객으로 참석,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역사는 계속 기억됨으로써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기억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의 미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제62주년 4·19혁명을 맞이하면서 갖는 생각이다.

이현호 우신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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