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아닌 ‘좋은 어른’
‘꼰대’가 아닌 ‘좋은 어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2.03.2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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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가장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를 뽑아보자면 ‘꼰대’가 아닐까 싶다. ‘젊은 꼰대’라는 말도 등장하는 것을 보니 꼰대는 특정 연령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20대인 나 또한 언제든지 꼰대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잘 되라는 뜻으로, 아쉬움을 담아 학생들, 후배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지만, 타인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어른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많지만 좋은 어른이 많지 않다는 사실과 나이테가 늘어난다고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슬프게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꼰대라고 특징지어지는 사람의 특징은 대화의 중심이 ‘우리’가 아닌 ‘자신’이라는 점이다. 대화는 둘 이상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지만, 이들로서는 대화의 중심이 타인이 아닌 나인 탓에 ‘나의 생각’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나이가 어린 경우, 경험이 충분하지 않기에 아직 잘 몰라 그렇다며 상대방의 생각에 유의미한 비중을 두지 않는다. 다른 이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너의 대화는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고 단정한다. 쌍방향 상호 작용이 되지 않고 꼰대와의 대화는 답답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좋은 어른과 하는 좋은 대화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때로는 인생을 확장시키는 경험을 만들고, 다른 누군가가 안 될 거라 고개를 저었던 일에 기대를 걸며 가능성에 도전하며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좋은 어른의 존재 자체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잘살아내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안전지대가 되어주지만, 어느 순간 혼자서도 멀리 떠날 힘을 키워주기도 한다.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동지와 같은 친구와 동료도 중요하지만, 사회 초년생이 되어보니 삶을 살아가면서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좌충우돌 실수하며 자책하는 초년생에게 가끔은 “나만 이런 시절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나도 젊었을 때 그랬다”고 말할 수 있는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단어들이 큰 위로가 되고 안식처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때로는 묵묵히 고민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교단에 서고 교직 경력이 쌓이는 것만으로 좋은 교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학생과의 유대감이 저절로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연수를 듣고, 공동체 속에서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타인의 경험을 재구성한다. 때로는 익숙하지 않지만, 학생의 시선에서 고민하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선을 얻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적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과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어른을 겪어가는 것도 처음 마주하는 과정이기에 좋은 어른이 되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친밀한 사이가 아닌 공적인 사이에도 부모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는 것이 사회에서 관례로 넘어가는 습관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방정식이 변하였다. 지금은 이러한 질문으로는 우리 관계의 방정식이 풀리지 않는다. 구태의연한 물음 대신, 질문을 받는 사람을 고려하여 상대방을 위한 좋은 질문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 것도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꼰대’가 아닌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좋은 어른의 모습을 누군가가 기억하며 다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건강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 기꺼이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많아져서 우리 사회에 느슨한 유대감이 조금 더 촘촘하고 견고하게 쌓이길 바란다. 풍요로운 대화를 통해 과거의 지혜가 현재로 흘러 경직된 사회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조윤이 현대청운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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