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물길 20리’를 걸으며
‘언양 물길 20리’를 걸으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11.0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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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 여천동이 고향인 나는 언양이라면 어릴 적과 젊을 때 놀러 간 기억밖에 없다. 소풍, MT, 꽃놀이, 단풍놀이, 산 정상의 억새밭이 다인 것 같다. 늦가을 토요일, 중년의 나이에 다시 언양을 찾았다. K-water에서 후원하는 ‘울산(언양) 물길 20리 걷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쌀쌀해진 날씨는 가벼운 옷차림을 조금은 후회스럽게 만들었다.

언양읍사무소에서 울산의 식물 강의를 잠시 듣고, 대곡박물관으로 향했다. 해설사는 2000년, 대곡댐 건설차 토목공사를 하던 중 유물이 많이 나왔고, 그 유물들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고 했다. ‘아~ 그래서 대곡박물관이 세워졌구나.’

내가 사는 중구의 식수원도 대곡댐 물이라는 말을 듣고는 애착이 더 많이 갔다. 대곡댐 건설로 그 계곡에 살던 분들은 모두 이주했고, 마을은 집 한 채만 남긴 채 수몰되었다는 안타까운 얘기도 들었다. 울산시민들이 마실 물을 위해 삶의 터전을 내주신 분들에게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대곡댐은 K-water의 배려로 둘러볼 수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대곡댐 전망대에서 그 광경을 휴대전화에 담았고, 그 사진은 다시 보아도 시원스러웠다. 댐 아래쪽에는 작은 수력발전소가 있었다. 물이 넘칠 때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발전에 활용하는 지혜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댐을 뒤로하고 ‘천전리 각석’으로 향했다. 해설사의 신라 역사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525년 6월 법흥왕의 동생과 그 일행이 다녀가면서 새겼다는 글이 시선을 끌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흔적 남기는 것을 옛날부터 즐긴 모양이지. 요즘은 죽을 때 아무것도 안 남기는 게 좋다던데….’ 하지만 그 덕에 신라의 역사 조각이 각석(刻石)으로 남지 않았나. 그렇다면, 서라벌에서 언양까지 마차길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길을 아는 이마저 없다. 온갖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천전리 각석에는 원시시대의 원형 소용돌이 문양, 사각 소용돌이 문양, 소용돌이 2개가 마주 보며 도는 문양에다 마름모꼴이 교차하는 문양도 있었다. 그런 문양들이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많았던 것으로 보아 우리 고유 문양의 바탕이 바로 여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울산의 첫 번째 국보 ‘천전리 각석’이 우리 가까이에 있고, 그 근처에 공룡 발자국 화석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도 언젠가는 공용처럼 멸망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는 울산의 두 번째 국보 ‘반구대암각화’로 발길을 옮겼다. 가는 길에 국궁(國弓) 시합 장면이 시야에 잡혔다. 과녁은 150m 거리에 있었다. 나도 활을 당겨보았다. 생각보다 쉬운 것 같아 세게 당겼다가 놓는 순간, 활의 줄(시위)이 벗겨지면서 내 팔을 쳤다. 너무 아팠다. 국궁을 잘못 당기면 줄이 벗겨진다는 사실과 시합장 근처에 국궁 연습장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날씨 좋은 봄날, 활을 쏘러 한 번 더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친김에 ‘벼루 장인’(市 무형문화재 제6호 벼루장) 유길훈 선생의 전시회도 구경했다. 반구대 주변의 돌을 망치와 정으로 쪼아가며 만든 ‘언양록석벼루’ 전시였다. 반구대암각화가 그렇게 오래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가는 길의 옛 이름이 ‘벼룻길’이라는 글귀를 400여 년 전 누군가 암벽에 새겼다는 말도 들었다.

마지막은 언양읍사무소 방문이 장식했다. 읍장 경력 20년 남짓한 옛 읍장님이 다양한 언양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의 언양까지’, 2시간짜리 강의는 언양을 새롭게 보는 눈도 열어주었다. 그분의 얘기는 언양으로 이사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최상복 ㈜KAR 연구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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