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의 장례문화 ‘임종게(臨終偈)’
절집의 장례문화 ‘임종게(臨終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7.2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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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서는 세속과 달리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이 있다. 세속에서는 ‘유언(遺言)’으로 통하지만, 승가에서는 임종게(臨終偈)로 통한다. 임종게는 승가의 장례문화 중 하나로 노승(老僧)들이 세상을 하직할 즈음에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학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말한다. 열반게(涅槃偈)·열반송(涅槃頌)·입적게(入寂偈)라고도 부른다.

임종게는 노승이 살아왔던 삶의 경험적 표현이기에 때에 따라 오래도록 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삶에 이정표로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임종게는 일반적으로 한시의 형식에 따라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형태를 취하지만, 형식을 무시하거나 남기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휴정(休靜 1520~1604) 스님은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으니/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러하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는 임종게를 남겼다. 지금도 인용된다. 양산 통도사 경봉(鏡峰 1892∼1982) 스님은 “인생은 한바탕 연극이다. 나는 연극배우로 중 역할을 잘하고 떠난다”라고 했다. 연극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승·속에서 회자하였다.

합천 해인사 성철(性澈) 스님은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40년 납자(衲子)는 곱씹곤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8대 종정을 지낸 서암(西庵 1917∼2003) 스님은 제자가 열반송을 묻자, “나는 그런 거 없다. 정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라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라고 한 일화에서 임종게를 남기지 않은 사례가 확인된다.

지난 22일 금산사 만월당에서 돌아가신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1935∼2021) 스님은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라고 했다. 수행자는 일의 이치를 살펴보건대 섬뜩한 말이다. 마땅히 마음에 새겨 남은 일상에서 성찰하고 통찰해야 할 이유이기에, 반드시 실천해야겠다.

이제는 시대적으로 절집에서도 임종게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화승(畵僧)은 임종화(臨終畵), 작법승(作法僧)은 임종가(臨終歌)와 임종작법(臨終作法)을 남기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세속에서는 이미 실천하고 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歸天)〉이란 임종시(臨終詩)를 남겼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임종게를 대신할 임종가를 세속에서 찾아 이미 부르고 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멀리 찾아서/ 휘돌아 감은 그 세월이 얼마이더냐/ 물설고 낯선 어느 하늘 아래/ 빈 배로 나 서 있구나. 채워라 그 욕심 더해가는 이 세상이 싫어 싫더라/ 나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련다 내 마음 받아 주는 곳/ 아 어머님 품속 같은 그곳 회룡포로 돌아가련다”(가요, 회룡포).

회룡포의 상징적 의미는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연결할 수 있다. “나는 항상 세 가지 보배를 가지며 실천하고 있다. 첫째는 자애로운 돌봄이고(慈), 둘째는 스스로 살펴보는 검소함이며(儉), 셋째는 감히 세상 사람들 앞에 나대지 않는 것이다. (不敢爲天下先)”. 〈회룡포〉를 인용한 것은 객관적 삶을, 〈도덕경〉을 인용한 것은 이타심을 증장(增長=늘려서 더 자라게 함)하고 이기심을 실소제(悉消除=모두 사라지게 없애버림)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라는 월주 스님의 반문(反問)이 진정한 사자후(獅子吼)로 하울링(howling)이 되어 화두로서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성수 철새홍보관장·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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