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에 갔을 때 이야기다. 훈련소에서 지급받은 군 장비 중에 ‘수통’이 있었다. 군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줄 ‘물통’이다.
1998년 개봉한 영화,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가 새삼 떠오른다. 적진에서 친형 3명은 모두 전사하고 실종된 유일한 막내 ‘라이언 일병’을 구한다는 이야기다. 미 행정부의 특별한 임무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오마하해변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긴장과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극적으로 라이언 일병을 구출한다. 가장 인상적이고 리얼한 장면은 한 대원의 ‘수통’. 총알에 관통당해 물이 철철 흐르다 점차 피가 새어 나오는 서스펜스는 최고의 하일라이트다.
나는 평상시 왼손에 나의 소중한 생명줄 ‘물통’을 들고 다닌다. 춥거나 덥거나 관계없이 지니고 다닌다. 분홍으로 칠해진 조그마한 물통인데 무겁지도 않고 가벼워서 좋다. 기껏 500그램밖에 되지 않는 ‘아령’ 정도의 무게다. 작년 조국 전 장관이 기자회견 할 때 손에 들고 다니던 값비싼 텀블러 같은 것도 아니다. 툭하면 잃어 먹어 그런 것은 이제 사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보온이 잘 되면 최고니까.
‘물통’은 다른 말로 수통, 워터보틀, 텀블러라고도 한다. 플라스틱, 유리,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색, 크기, 모양도 다양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나무껍질이나 동물가죽으로 만들어 원시적으로 애용했다.
보온이 잘되어야 하는 이유는, 항상 ‘강황’ 가루를 물에 타서 갖고 다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의 생활규칙처럼 됐다. 울금 가루라고도 하는 이것을 따끈한 물에 타서 먹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째다. 새로운 강황 가루가 배달될 때마다 뚜껑에다 유성펜으로 ‘2012년 2월부터’라고 써 박아 놓는다. 그 순간마다 마음이 뿌듯하다.
먹는 이유는 몸에 좋다고 하니 그저 먹을 뿐이다. 우리의 몸은 스스로 자연적인 저항력이 있을 뿐 아니라 면역력도 자생하지 않는가? 하지만 어느 시기엔 적절한 구황식물을 섭취하는 것도 만병에 특약이 될 수 있다.
‘강황’이라는 뿌리식물은 오래전부터 인간들에게 이로운 식물로 여겨왔다. 근래에는 카레같이 다양한 슬로우 푸드에 가미되어 건강식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의 식욕을 돋우고 있다. 인도나 일본에서 말하는 카레의 원료가 바로 커큐민(curcumin) 성분이다. 이것은 우수한 간 보호 효능이 있어 아픈 옆구리를 낫게 하고, 담즙을 분비하여 지방 성질의 음식을 소화시키는 이담작용도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파혈행기(破血行氣) 즉, 어혈을 깨트려 기가 정체된 것을 풀어 순행시켜준다고 한다. 또 통경지통(通經止痛), 경맥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통증을 멎게 한다고 한다. 어혈이 한군데 모여 생기는 복통, 타박상, 종기를 치료하고, 항균작용뿐 아니라 냉기를 헤치고 풍을 없애주는 천연 약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가 물통을 갖고 다니는 또 다른 이유는 ‘아령’ 같은 운동도구로 대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몸에 ‘근육’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뼈만 보이는 유령들이 사는 무서운 도시로 말이다. 근육이 있어야 걸을 수 있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지 않은가? ‘아령’이라는 물건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소지품으로 봐야 한다. 걸을 때도 흔들어 단련할 수 있고 무료할 땐 리드미컬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이란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은 바뀌게 마련이다. 장수시대,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좋은 슬기로움이 있을까? 각자 물통 하나씩 들고 ‘물통 캠페인’이라도 벌이자.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 에세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