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 분야 ‘국제기술사 자격’에도 도전할 겁니다”
“용접 분야 ‘국제기술사 자격’에도 도전할 겁니다”
  • 김정주
  • 승인 2021.06.0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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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 분야 그랜드슬램의 주역’ 권순두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교수
권순두 교수.
권순두 교수.

 

-인성교육 지침 “먼저 인간이 되어라”

중구 산전길 155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6호관 3층. 연구실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문자들. 그의 사람 됨됨이를 일러주는 무언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려라)’, ‘준비하지 않는 역사는 다가오지 않는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오고, 도전하는 자만이 쟁취할 수 있다’. 자세히 보니 커튼도 벽면의 오동나무 걸이도 온통 문자 천국이다.

그리고 더 있다. 글씨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인성(人性)을 강조하며 들려주는 말이지만 ‘선(先) 인간, 후(後) 기능’이란 말이 그것. ‘기능인이 되기에 앞서 먼저 인간이 되어라’는 뜻의 훈시인 셈이다.

권순두 산업설비자동화과 교수(55). 그의 이름 석 자가 최근 한창 뜨는 중이다. 얼마 전 KBS 울산은 그를 토크쇼 ‘이슈 인사이드’에 화제의 인물로 초대했다. 누구도 감히 범접하기 힘든 놀라운 업적 때문이지 싶다. ‘마침내 용접기술 분야의 그랜드슬램 달성’. 지난달 12일 한국화학연구소 RUPI사업단에서 낸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2019년 12월, 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강의 현장에서 기념촬영에 응한권순두 교수와 제자들.
2019년 12월, 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강의 현장에서 기념촬영에 응한권순두 교수와 제자들.

 

-기능장-박사-기술사로 ‘그랜드슬램’ 영예

보도자료를 조금 더 인용하자. “그는 지독히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한독부산직업훈련원에 입학해 기능올림픽 선수 생활을 했다. 3년 과정을 마친 후 H사에 특채로 입사해 약 10년간 현장에서 용접 실무를 담당했다. 그 후 H사 특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창원기능대학 기능장 과정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기능장과 함께 직업훈련 교사자격증을 취득하면서 23년간 H사에서 용접기술을 가르쳤다.” (‘H사’란 현대중공업을 가리킨다.)

기능장의 꿈을 이룬 권 교수는 제2의 꿈을 향해 도전의 칼을 갈기 시작한다. ‘용접 분야의 그랜드슬램(기능장-박사-기술사) 달성’이란 목표를 새로 세우고 이를 악문 것. 어떤 제약과 난관도 그의 도전정신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했다.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학점은행제’를 통한 학사학위도 취득했다. 그 다음은 울산대 산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부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당면 목표. 이 벅찬 꿈들도 빙벽 등반로를 개척하듯 기어이 이뤄내고 만다. 그를 주저앉지 않도록 끝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것은 꿋꿋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정신이었다.

‘기술사 국가자격증’이란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때는 지난 5월 7일. 용접기술사 1차 시험을 5번, 2차 최종면접을 3번이나 거친 끝에 고달프고 지난(至難)한 과정, 그 인고(忍苦)의 끝자락에서 거머쥔 금메달의 영광이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사안이 있다. 기능장이 된(1994) 후 현대중공업에 ‘기능장회’의 씨앗을 뿌린 일이 그것. “1999년 처음엔 26명으로 발족하였으나 지금은 적어도 1천명은 될 겁니다.” ‘전국 단일회사 가운데 최다(最多) 규모 기능장 모임’의 마중물 역할을 권 교수가 도맡아 해냈던 것.

2005년 8월, 한국형 구축함 1호 ‘세종대왕함’ 건조에 투입될 용접 전사들과 권순두 당시 현대중공업 대리.
2005년 8월, 한국형 구축함 1호 ‘세종대왕함’ 건조에 투입될 용접 전사들과 권순두 당시 현대중공업 대리.

 

-그의 사전에 ‘오기’는 있어도 ‘포기’는 없어

현대중공업의 생산과 교육훈련 현장에서 햇수로 33년(1984.4∼2016.12)이나 ‘용접’ 한 우물만 파온 권순두 교수. 그의 첫 현장경험은 무한대의 인내를 요구했다.

기능올림픽 선수의 꿈을 싹틔운 부산 온천장 한독부산직업훈련원의 병아리 훈련생 시절, 2주간 어깨너머로 훔쳐 배운 용접기술은 눈썰미와 집념이 남달랐던 그에게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다. 1984년 4월 21일, 처음 도전한 부산지방기능경기대회 가스용접 직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행운이 찾아온 것. 마침 이날은 현대중공업 특채 입사까지 겹쳐 겹경사가 일어난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지방 기능경기대회 장원 급제에도 불구하고 전국 무대의 문턱은 뜻밖에도 높았다. 두 차례 모두 ‘노메달’의 수모를 맛보여 준 것. 하지만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오기’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非용접 분야 기능장·기술사도 도전 대상

권 교수의 존재감은 3차례의 학위(학사-석사-박사) 취득뿐 아니라 4차례의 자격증 취득 성과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재료 분야, 2016.12) △직업능력개발훈련 교사자격증 취득(용접 2급 외 2종, 1999.6) △국가기술자격 용접기능장 취득(1994.4) △국가기술자격 용접기술사 취득(2021.5)이 바로 그것.

이밖에도 그가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이룬 업적은 수없이 많다. 현대중공업 교육팀장에서 현중공과대학 겸임교수로, 군산대·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의 시간강사로, 폴리텍대학 대구캠퍼스 시간강사·초빙교원으로 폭넓은 교육경험까지 두루 맛보았던 것.

그러나, 그에게 쉼표란 존재하지 않는다. 2019년 2월부터 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의 교수로 봉직하면서 용접 분야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또 하나의 원대한 꿈이 은하계의 블랙홀처럼 그를 세차게 빨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제 주변에는 용접 말고도 다양한 분야의 기술 세계가 널려 있습니다. 이번에는 배관, 가스, 에너지 분야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은 겁니다. 이 방면의 기능장과 기술사 자격에도 도전하려는 것이지요.” ‘용접 분야의 국제기술사 자격’에 대한 도전 의지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경북 청도 운문면 봉하마을에서 태어난 권 교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부모를 따라 이사한 경주 산내면 감산마을에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그에게서 어떻게 그런 배포가 생겨났을까? 산내중학교를 마지막으로 ‘나의 문교부 학력은 여기서 끝’이라고 절규하던 그에게 마침표를 모르는 변신은 어쩌면 무한대의 자유인지도 모른다.

2019년 12월, 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강의 현장에서 기념촬영에 응한 권순두 교수와 제자들. 사진제공=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2019년 12월, 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강의 현장에서 기념촬영에 응한 권순두 교수와 제자들. 사진제공=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등산학교 학생으로 만나 ‘연인→부부’로

인터뷰 대화를 나눈 그다음 날은 권 교수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권 교수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제 아내 생일이거든요.” 동갑내기라 했지만 어림 셈법으로도 다섯 달 차이가 났다. 부인 임미순 여사(55)의 생일이 딱 그만큼 빨랐던 것.

울산 문수산 아랫마을에서 태어난 임 여사와는 30여 년 전 울산 동계 등산학교에서 학생으로 만난 사이. 그러던 차에 묘한 인연의 시간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신불산 홍류폭포 근처에서 일박하던 때였습니다. 졸업선물비로 1인당 2만 원씩을 내기로 돼 있었는데 제가 이런 말을 했지요. ‘돈 내는 김에 제 것도 좀 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그랬더니 미순 씨가 두말없이 내줍디다. 아직도 못 갚고 있지만…(웃음)”

연인 사이로 발전한 두 산악인 커플은 24살(1990년)에 가정을 꾸렸고,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그래서인지 산행(山行)이라면 말리는 일이 없고 ‘백두대간 종주’ 목표도 부부가 한마음으로 이뤄냈다. 남은 목표는 ‘국내 100대 명산’을 부부동반으로 등정하는 일. 지금까지 둘이서 같이 등정한 산은 무려 예순넷을 헤아린다.

“지난가을과 겨울에는 저 혼자서 암벽등반과 빙벽등반 삼매경에 빠졌는데, 아내는 무조건 환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걸 워낙 잘 알고 이해해주니까….”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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