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아버지의 통한
한강변 아버지의 통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6.0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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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강변에서 일어난 의대생 의문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대단하다. 지난 5월 초 청와대에 청원한 후 동의 수가 무려 47만 명을 넘겼다.

외아들 손군을 잃은 아버지의 통한은 가슴이 여러 번 찢어지고도 남는다. 한쪽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또 한쪽은 의사다. 양쪽 대학생의 엄마는 같은 학교 학부형이어서 자주 연락하는 사이다. 지난 4월 하순 실종됐다가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손군.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실종된 바로 전날 늦은 밤, 친구가 불러 한강변에서 술을 마시고 새벽 4시 전후에 행방이 사라졌다. 친구의 부모는 아들의 신발이 더럽다고 버렸고, 핸드폰도 손군 것만 있고 자기 것은 어디에 있는지 술에 취해 모른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전 환경미화원이 한강변 잔디밭에서 주워 늦게 신고했다. 당일 새벽 5시 반경 친구와 그의 부모 모습이 찍힌 한강변 CCTV에 서성거리는 이상한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손군의 부모에게는 실종된 사실을 급히 알리지도 않은 채였다. 이렇게 뚜렷한 여러 정황이 의문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게 돼버렸다.

유가족 대부분은 이런 일을 당하면 울고불고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러나 손군의 아버지는 이성적이면서 냉철하고 감정적이지 않았다. ‘우리 아들을 살려내라’가 아니라 ‘평생 안 봐도 좋으니 살아만 돌아와라’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호소를 들으면 마음이 찡하다. ‘아들이 한강에 왜 들어갔는지 그것만이라도 알았으면 합니다.’ 이런 간절한 마음에서, 슬픈 심정을 절제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것이다.

‘이성(理性)’이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에 호소한다’라든가 ‘아들의 사고 소식을 접한 그녀는 이성을 잃고 아들의 이름만 불러댔다.’라고 표현한다. 철학적으로는 진위나 선악을 구별하여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일컬을 때 말하지만, 특히 칸트는, 선천적 인식능력인 이론이성과 선천적 의지능력인 실천이성을 통틀어 말하기도 한다.

요즘같이 코로나 사태로 흉흉할 때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편하지 않은 일이다. 좋아하는 삼겹살 구이에 소주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멈칫 주저하게 된다. 이같이 우리 인간은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라 헤매기 십상이다. 왜 우리 인간은 이같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드는 걸까?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 킵 스미스 교수가 2003년 논문에서 밝힌 바 있다.

내용을 보면, 실험대상자가 위험하고 애매한 상황 속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그런 후 뇌가 활동하는 모습을 단층촬영기로 관찰한다. 그 결과, 사람이 고민할 때에는 신중하게 판단하는 뇌 부위(이성)와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뇌 부위(감정)가 동시에 작동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뇌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이성과 감정’의 지배를 동시에 받고 있다. 그래서 앞의 삼겹살 식당과 같이 일상의 사소한 일거리에서도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대사(大事)에서 엄청난 양의 감정을 소모한다는 사실은 백 번 일리가 있다.

우리 인간은 이성과 감정이 적절히 조화될 때 정상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한 달이 넘어가는 미궁의 사건. 부디 한강변에서 일어난 의대생 변사사건이 하루빨리 명확히 판명되어 유가족의 간절한 원을 풀어주기를 바란다.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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