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 교육, ‘삶을 위한 교육’ 꼭 실천할 것”
“민주시민 교육, ‘삶을 위한 교육’ 꼭 실천할 것”
  • 김정주
  • 승인 2021.01.0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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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단에 서는 권정오 19대 전교조위원장
권정오 19대 전교조위원장.
권정오 19대 전교조위원장.

“위원장직 2년은 우리 교육의 발자취”

지난해 12월 15일, <교육희망>(=전국교직원노조 신문, 주간)에 실린 칼럼 한 편이 안팎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갑니다”란 제목의 ‘위원장 서신’에는 2년 임기를 성공리에 마치고 다시 울산의 교단으로 돌아가는 권정오 제19대 전교조 위원장(56)의 인간적 체취가 흠씬 묻어났다.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항쟁을 다시 생각합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겨울, 촛불을 든 우리의 심장이 갈망한 것은 무엇인지, 이 사회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전진하였는지 돌아봅니다.…이 시기 촛불을 다시 돌아보는 까닭은, 우리가 여전히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촛불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풀어야 할 숙제이며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독백은 계속 이어진다. “무거웠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2년의 임기를 며칠 남겨두고 있습니다.…지난 2년의 시간이 조합원들의 삶과 학교를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끄럽기까지 합니다.…자랑스런 전교조의 31년 역사는 한국교육 발전사 그 자체이지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조직에 뿌리 깊게 내재된 관성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저에게 지난 2년은 그 관성과 싸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들과 울고 웃는 교사로, 전교조 5만 조합원의 한사람으로 돌아간다”며 작별을 고했다. 끝 문장에는 ‘첫눈 위에 찍힌 선명한 발자국’이 들어갔다. “첫눈이 내립니다. 새로운 교육을 향한 우리 조합원들의 묵묵한 헌신은 첫눈 위에 찍힌 선명한 발자국처럼 우리 교육 발전의 발자취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2019년 5월 10일, 청와대 앞에서 “법외노조 원천무효” 구호를 외치며 ‘24시간 밤샘 노숙투쟁’에 나선 전교조 조합원들.
2019년 5월 10일, 청와대 앞에서 “법외노조 원천무효” 구호를 외치며 ‘24시간 밤샘 노숙투쟁’에 나선 전교조 조합원들.

 

2차례 해직, 8년 유랑 끝에 원직복직

1월 1일자로 ‘교단 복귀’ 명령을 받은 권정오 선생을 지난 2일 점심나절에 만났다. 사진도 찍을 겸해서 만날 장소로 새 발령지인 ‘호계중학교’를 권했으나 그는 고집스레 ‘신문사’를 원했다. 아직 개학도 안한 시점에 학교부터 찾아간다는 것이 염치없는 짓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렇다고 발령 난 학교를 전혀 안 가본 것은 아니다. 성탄절 하루 전인 12월 24일, 동료 과학교사 몇 분을 학교에서 만나 수인사를 나누고 과학교재와 교사지도서도 한 아름 받아온 것. 순간 그의 눈빛에는 잠시 그늘 같은 것이 어른거렸다. “솔직히 교사로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아이들과 학교생활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조금은 두렵습니다.”

사실 권정오 선생은 교직에 첫발을 디딘 지 올해로 32년차를 맞는다. 그러나 ‘본의 아닌 유랑신세’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의 교단 입문의 첫 단추는 ‘1989년 3월 1일, 울산제일고’에서 끼웠다. 하지만 바로 그해 7월 22일,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직의 쓴잔’을 맛보고 만다. 4개월 보름을 겨우 채운 시점이었다. (이 무렵의 해직교사 수를 그는 1천527명으로 기억했다.) 그러다 울산 명덕여중으로 복직 발령을 받은 것은 4년 8개월이 지난 1991년 3월 1일.

이후 1997~2008년 사이에 그는 전교조 울산지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정책실장 7년, 울산지부장 4년(2013~2016)의 기록은 그에게 ‘주홍글씨’인 동시에 자랑스러운 훈장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울산지부장 직을 맡은 2013년에 교단을 비웠으니 다시 교단에 서게 된 것은 근 8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 9월 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교조의 법적지위 회복을 자축하며 손을 맞잡아 보이는 전교조 집행부 관계자들.
지난해 9월 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교조의 법적지위 회복을 자축하며 손을 맞잡아 보이는 전교조 집행부 관계자들.

복직교사 급여 전액, 전교조기금으로

그래서일까, 박근혜 정부 초입인 2016년 2월 28일, ‘두 번째 해직’이라는 달갑지 않은 멍에가 그의 두 어깨를 짓누르고 만다.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따른 전임자 복귀 거부’가 그 이유였다. 이 무렵의 ‘해직 동지’는 35명을 헤아린다. 그 속에는 한 살 아래 부인 양수연 여사(55, 매곡중학교 과학교사)도 섞여 있었다.

이들 가운데 34명은 지난해 9월 3일 ‘법외노조 취소’를 판시한 대법원 판결과 9월 4일 ‘원직 복직’을 명한 고용노동부 결정으로 다시 교단에 설 기회를 얻는다. (나머지 1명은 정년퇴임.)

“전교조 지우기 작업은 노무현 정부 말기, 모질도록 끈질겼던 것으로 압니다. 민주정부가 재집권하면 진보적 교원단체(전교조)와 손잡고 큰 변혁이라도 일으킬까봐 잔뜩 겁이 났을 겁니다. 그 당시, 기득권세력과 보수언론의 기세가 얼마나 등등했습니까? 흑색선전까지 동원해 가면서….”

돌이켜보면 2020년 9월 4일은 전교조가 ‘노조 아님’ 딱지를 떼고 합법적 지위를 되찾은 날이다. 그 직후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해직교사들이 원직 복직과 함께 그동안 못 받은 급여 전액(100%)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권정오 선생이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렇다고 그 돈이 복직교사들에게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해직기간 동안 전교조에서 정상급여 전액을 지원해 드렸으니까….” 돌려받는 해직교사 급여 전액이 전교조 기금으로 적립된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그에게 남은 응어리는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에 결석처럼 박혀있다. 1987년 1차 해직 때 받은 불명예의 자국이 34년째 지워지지 못한 탓이다.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작년 11월 17일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야당의 반대와 예산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빛을 못 보고 있지만,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때문에 그는 그동안 급여 문제에서 불이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동기들보다 5호봉이나 낮아졌다는 것. 당시의 해직기간을 5년으로 잡는다면 매월 50만원씩 적게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9년 2월 20일, 전교조 본부 사무국을 방문한 유은혜 교육부장관(왼쪽)과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2019년 2월 20일, 전교조 본부 사무국을 방문한 유은혜 교육부장관(왼쪽)과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저명인사들과의 만남, 개인적 행운”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실감날 때도 더러는 있다. 결혼 문제도 그런 경우 아니냐는 익살스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사실 부인 양수연 선생은 경북대 사범대학 화학교육과 1년 직계후배다. 전교조 창립 때도, 해직 때도 둘의 사이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권정오 선생이 애틋한 순애보의 한 가락을 슬쩍 흘린다. “실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었는데, 첫 해직 1년 뒤에 바로 해버렸지요.”

그러나 전교조 전국본부 위원장이란 중책이 맡겨진 뒤로는 ‘주말부부’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그러나 취임 첫해인 2019년에는 그럴 겨를도 없어 ‘월말부부’ 신세나 다름없을 때가 더 많았다. ‘법외노조 취소’ 투쟁과 ‘새로운 30년’ 구상이 그의 첫 번째 소명이었기 때문,

그런 과정에서 주어진 ‘저명인사’들과의 만남은 어찌 보면 개인적 행운이었다. 유은혜 장관, 백낙청·한완상 교수, 함세웅 신부, 백기완 선생들이 그런 분들. ‘법외노조’ 문제 풀기 위한 사회적 역할을 기대했고, 실제로 큰 힘이 돼준 분들이 아니던가.

학교로 돌아가면 진지하게 실천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지식 중심, 암기 위주 교육의 덫에 걸린 어린 학생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것도 그중의 하나. 2019년에 화두를 던졌던 ‘삶을 위한 교육’, ‘미래 30년을 위한 교육’, ‘즐겁고 행복하고 보람 있는 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실천과제들이다.

그의 말에 힘이 실린다. “학교교육은 학생들이 권리와 함께 책임의식도 지닌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길러주어야 합니다. 울산에서도 ‘민주시민 교육 조례’가 제정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지요.”

경북 안동이 고향. 산행이 취미다. “이따금 서울 근교 산행을 즐겼지요. 그것도 혼자서. 고민거리를 풀거나 사업 구상을 할 때는 나 홀로 산행이 제격이지요.”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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