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책방 가는 길
늦가을, 책방 가는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11.1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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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한 주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집에서 준비물을 챙겨 출발한다. 가는 곳은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책방. 공원길을 걸으면서 고즈넉한 늦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기온을 보니 오전 10시 현재 12도, 전형적인 늦가을 날씨에 단풍든 가로수 위 푸른 하늘에 검정 붓으로 주욱 긋고 싶은 마음이다. 좀 있으면 이 계절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라 아쉽다. 이별의 ‘시’가 저절로 아른거린다.

‘시’란,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심리적 정서를 멋지게 드러내는 일이다. 이별의 상황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개인마다 다르다. 싫은 사람과의 이별이라면 후련하고 시원한 마음이 들지만, 대부분의 이별은 지독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게 마련이다.

김소월의 ‘가는 길’을 읊어보자.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후략)/〔가는 길, 김소월〕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4단 형식을 취한 애절한 서정시다. 내용으로 보아 내면풍경을 그린 1, 2연과 외면풍경을 묘사한 3, 4연으로 나누어본다. 앞 풍경은 임과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는 심정이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표현된다. 뒤 풍경은 이별의 안타까운 심정을 직접 나타내는가 하면 ‘가마귀’와 ‘강물’을 통해 이별의 망설임이 제시된다. 해 진다고 지저귀는 가마귀와 어서 따라오라고 재촉하는 강물은 미련 때문에 머뭇거리는 안타까움을 나타내어 이별의 애절함을 고취시켰다. ‘좋아했던 사람’과의 이별이나 ‘곱디고운 자연’과의 이별은 뭐가 다를 바 있겠나?

생뚱맞게 이 늦가을에 책방으로 가는 ‘나만의 길’을 따로 만들어놓았다. 책방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이 길 저 길 다 실험해보았지만 별도로 만든 ‘나만의 길’이 제일 마음에 든다. 걷기에 편하거니와 인적이 드물고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스쿨존같이 안전한 길이어서다. 중간 중간 가장자리에 건널목 신호등도 걸려있다. 알고 보니 가까이에 초등학교도 있고 유치원도 있다. 흙길처럼 부드럽게 밟을 수 없지만, 보드블록으로 잘 깔아놓아 비오는 날 흙탕물 따위는 튀지 않아서 좋다.

왼쪽 손엔 마호병을, 오른쪽은 가벼운 노트북 파우치를 들었고, 등받이엔 백팩도 걸쳤다. 작은 마호병에는 강황가루를 탄 따끈한 물이 채워져 있다. 오늘 먹을 커큐민량. 티스푼 두 개정도의 양으로 2그램이다. 몸에 좋다고 하여 먹어왔는데 어언 9년째나 된다. 헤아려보면 6톤을 먹은 셈이다. 몸이 가뿐한 것이 공것은 아닌가보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노트북은 나의 분신이어서 조심스럽다. 세상구경을 할 수 있고 글도 짓고 동화상도 보기에 나의 필수기호품이나 다름이 없다. 이젠 손에 익어 낯설지 않다. 행여나 손에 들지 않으면 상실감으로 느즈러져 안정되지 않는다.

메고 있는 초콜릿색 백팩은 집 떠나 있을 때를 대비하여 나의 세간물품이 고물고물 들어있다. 필기구, 티슈, 손소독제, 칫솔, 치약, 안경, 독서노트, 메모지, 유에스비, 다크 초콜릿, 패독산(한방감기약) 등이다. 소위 이동하는 살림방이다.

먹자골목 양옆을 빠져나와 호떡가게 앞에 닿으면 목적지 ‘책방’ 입구다. 탁자를 깨끗이 닦고 하루를 시작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보내는 나만의 사색장소. ‘사색하라!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련다.

한 주가 시작되는 늦가을 아침. 현대풍 나는 책방에서 신간서적을 펼친다. ‘새로 나온 책’은 한 주의 첫날 아침에 제격이다. 책속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고 생생한 풍경화가 전개된다. 내가 몰랐던 삼라만상의 세계가 이렇게 오묘할 줄이야! 차분한 책방에서 ‘생각’에 잠기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으랴! 오늘따라 나 자신이 우아하고 넉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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