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민 건강 책임감에서 사육환경번호 1번 달걀만 생산”
“울산시민 건강 책임감에서 사육환경번호 1번 달걀만 생산”
  • 김정주
  • 승인 2020.10.0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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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에도 앞장선 정진익 ‘산계농장’ 대표
동물복지에도 앞장선 정진익 ‘산계농장’ 대표
동물복지에도 앞장선 정진익 ‘산계농장’ 대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1344-1 산계농장. 내비게이션 딸린 자가용이라도 없으면 초행길 나그네는 십중팔구 헤매기 마련인 산골오지의 산란계(産卵鷄) 농장이다. 첩첩산중이란 느낌이 그나마 덜 드는 것은 농장 진입로 부근의 노인요양시설 간판 덕분일 게다. 중구의 한 대형교회에서 운영한다는 ‘내와동산’과 운영주체가 또 다른 ‘효도의 집’이 그런 시설들.

추석연휴 첫날(9월 30일) 이른 오후, 1시간 가까이 차를 몰아 농장 문턱을 두 번째로 밟았다. 첫 방문은 12일 전인 지난달 18일. 농장이 입지한 내와리 ‘외와마을’이 경주시와 맞닿아 있어서일까, 이날따라 재난안전문자 6건의 발신처는 모조리 ‘경주시’인 게 신기했다. 이따금 양산시에서 보내오는 문자도 잡힌다니 농장 식구들로서는 지역 정체성이 다소 헷갈릴지도 모르는 일.

‘산속에서 건강한 닭들이 낳은 유정란’

<닭이 행복하고, 키우는 사람도 행복하고, 먹는 사람이 행복한 알.> 판매·선물용 포장상자에 적힌 글귀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이 한 줄 더 있다. <산계농장은 산속에서 뛰어노는 건강한 닭들이 낳은 유정란을 공급합니다.>

먼 길 마다않고 짐짓 찾아간 이유이기도 했다.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과 ‘정말 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현장취재 욕구를 자극했던 것.

문득 4년 전 일이 떠올랐다. 지인의 얘기를 듣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인터뷰를 벼르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 꿈은 때가 그르치고 만다. ‘닭의 해’인 2016년이 저물 무렵 지구촌을 휩쓴 조류독감(AI)이 그럴 기회를 앗아갔던 것.

실로 4년 만에 성사된 정진익(53) 산계농장 대표와의 첫 대면. 4년 전이라면, 정 대표가 고향마을인 울주군 상북면 못안마을(池內里)에서 3년째 돌보던 산란계 농장을 두서면 쪽으로 막 이전하려던 시점이 아니던가.

그러던 그의 근황이 우연히 안테나에 잡혔다. 정 대표가 한 달에 네댓 번은 찾는다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하늘물고기’(중구 백양로 123/ 성안동)의 김미라 시설장(55)이 귀띔해준 덕분이었다. 정 대표는 알고 지내던 ‘울산한살림’ 관계자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이 시설에 대한 ‘달걀 위문’ 봉사를 내리 4년째 한다고 했다.

계사 안팎에서 자유를 즐기는 산계농장 산란계들.
계사 안팎에서 자유를 즐기는 산계농장 산란계들.

 

‘산짐승 천국’…삵·오소리·담비까지 설쳐

백운산 자락에 둥지를 튼 산계농장에서 현재 키우고 있는 닭은 산란계 품종인 ‘하이라인’ 약 6천 마리. 그래도 ‘소규모’라는 것이 정 대표의 말이다. 무엇보다 행정당국의 규제가 발목을 잡는 주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짙은 밤색과 갈색의 조화가 인상적인 하이라인 닭들. 이 녀석들은, 처음 마주쳤을 때도 그랬지만, 겁 없이 제 시간 보내기에 바빴다. 연신 모이를 쪼아대는 녀석들, 흙을 파헤쳐 모래목욕(흙목욕)을 즐기는 녀석들, 풀숲을 제 세상인 듯 헤집고 다니는 녀석들…. 그야말로 ‘자연방사(自然放飼)의 현장’이었다.

정 대표가 설명을 보탰다. “때가 되면 지들이 알아서 나갔다가 돌아옵니다. 오전 10시쯤이면 대부분 밖으로 나가는데, 철조망은 쳐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방이 울타리 천국이다. 닭을 못나가게 막기보다 포식자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시설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포식자(捕食者)라니? 듣고 보니 심상찮다. “(참)매, 황조롱이, (큰부리)까마귀. 같은 새는 차라리 덜하지요. 풀숲에서 알만 훔쳐 가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산짐승들입니다.”

산이 깊어서 그런가. 고라니, 청솔모는 그저 애교일 뿐이고 너구리, 족제비, 멧돼지에다 삵, 오소리, 담비까지 설친다니,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이 녀석(산짐승)들이 계사를 한 번 들락거리면 닭들이 숨으려고 한쪽 구석으로 몰리는데 이때가 제일 위험합니다.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으니.”

폐사의 원인이 밑에서 깔려죽는 ‘압사(壓死)’가 아니라 갑자기 올라간 체온 때문에 죽는 ‘열사(熱死)’라는 말은 헛웃음을 나오게 했다.

정진익-조경희 부부와 산계농장 지킴이인 반려견들.
정진익-조경희 부부와 산계농장 지킴이인 반려견들.

 

산계농장 달걀사육환경번호는 최상급 ‘1번’

산계농장의 계사(鷄舍) 수는 모두 3개. 하지만 이 중 1개는 ‘무허가’ 딱지가 붙어 실제로는 2개만 활용되는 실정. 그렇다고 그 쓰임새를 ‘케이지 사육’ 즉 가두어 키우는 일반 양계장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청하는 정도의 아늑한 휴식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산계농장에서 거두어들이는 달걀은 하루 평균 3천 개 안팎. 대부분은 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장과 울산한살림이란 단체에서 수시로 받아준다. ‘방목 자연란’ 이름으로 시판되는 이 농장 달걀의 공급가격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다른 양계장 달걀이 1개에 150원에 나간다면 산계농장 달걀은 1개에 400원에 나간다는 것이 정 대표의 말이다.

가격차가 그 정도로 많이?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값을 매기는 잣대가 다름 아닌 ‘사육환경’에이었기 때문이다. “달걀 껍데기마다 ‘사육환경번호’라는 게 찍혀 있을 겁니다. 다른 양계장 달걀의 사육환경번호가 ‘3번’, ‘4번’이라면 우리 농장 달걀은 언제나 ‘1번’입니다.”

눈으로 확인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법이 바귄 이후 달걀껍데기에는 두 줄의 부호가 찍혀진다. 정 대표네 달걀도 예외가 아니다. 윗줄에는 <0930>, 아랫줄에는 이란 부호가 찍혀 있다. 이때 아랫줄 부호의 끝자리 숫자 1이 ‘산계농장 달걀 사육환경번호’에 해당되는 것. ‘산란계의 사육환경이 최상급’임을 증명하는 보증수표인 셈이다.

“행정당국, 지원보다 규제에만 신경 써서야”

정진익 대표는 현재 대부분의 여건이 안정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로컬푸드도, 한살림도 판매대금이라면 매주 한 번 틀림없이 입금시켜 줍니다.” 그러면서도 당국에는 하고픈 말이 무척 많은 것 같았다. 매사를 ‘지원’보다 ‘규제’의 잣대로만 보기 때문일 것이다. “걸핏하면 ‘매뉴얼’입니다. 이런 것, 행정편의주의 산물 아닙니까?”

다 지어놓은 계사 한 채를 놀려야 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평소에도 울퉁불퉁하던 농장 진입로가 두 차례의 태풍으로 심하게 망가져도 도움의 손길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만도 아닐 것이다. 정 대표가 작심한 듯 말을 꺼낸다. “매뉴얼이란 것, 행정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현장경험을 중시해서 맞춤형 농축산 행정을 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긴, 2016년 말~2017년 초에 들이닥친 조류독감 사태 때만 해도 감염 우려가 크다며 풀어먹이지 못하게 가두어 키우라고 지시한 적도 있었다. 가축 사육을 무조건 제한하려 드는 것도 그렇고 민가에서 떨어져 있는데도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다보니 그에게 행정기관이란 곳이 지원기관이라기보다 방해세력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우리 닭들이 아카시나무 잎이나 상추를 참 잘 먹습니다. 그런데 군에서는 그런 걸 못 심게 하니 참 답답합니다. 그리고 농업정책도 지방자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군 농축산과가 왜 중앙정부의 행정을 대리 집행하는 선에 머물러야 합니까?”

울산공대-방송대 나온 엘리트 축산인 부부

정진익 대표는 울산고를 거쳐 울산대 공대에서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한 학구파. 어학연수차 다니던 일본 도쿄의 일본어학교에서 부인 조경희 여사(51)를 만나 열애 끝에 가정을 꾸몄다. 부산 연산동이 고향인 부인 역시 부산여전을 거쳐 방송통신대에서 일본어와 교육학을 전공한 재원.

이들 부부는 ‘동물복지’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달걀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양계농가도 그렇겠지만 우리는 항생제를 일체 사용하지 않습니다. GMO는 상상도 할 수 없고요.”

부부는 슬하에 20대에 접어든 1녀 1남을 두고 있다. 울산 출신 법륜스님의 ‘정토회’에 심취한 불자 가족이기도 하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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