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과학과 요리
재료과학과 요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1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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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엊그제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지혜가 늘어가야 하건만,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체감하는 센싱 능력만 늘어날 뿐이다. 아들들과 함께할 시간이 넉넉할 것 같은 겨울방학도 금세 지나가리라. 아들 넷을 키우느라 고생 많았던 마나님도 그동안 자제했던 외부활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바쁘게 지낸다. 그러다보니 첫째부터 셋째까지 끼니를 때우기 위한 색다른 준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루는 큰애가 라면을 끓여먹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봉지는 분명 짬뽕라면인데, 조리된 라면의 겉모양은 흔히 보던 짬뽕라면이 아니었다. 게다가 주방 테이블에는 짬뽕라면의 건더기스프와 분말스프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큰애에게 “이게 뭐니?” 하고 물어보니, 면만 짬뽕라면의 그것이라 했다. 국물은 거의 없고, 건더기는 적당히 썬 파만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숟가락으로 파가 있는 부분을 떠서 먹어보았다. 그럴싸한 맛이라고나 할까? 파로 백종원식 파기름을 만들고, 짬뽕라면의 면만 따로 삶아 채반에 받쳐내고 찬물로 헹구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분말스프도 라면의 분량에 비해 턱없이 적게 넣었다고 했다. 연구년을 맞아 미국을 방문했던 2015년 겨울, 백종원식 파기름을 내다가 파를 태워버린 쓰라린 기억이 남아있던 터라 큰애의 파기름-볶음라면은 나름 성공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따라 셋째 녀석도 시판되는 물만두를 물만두로 조리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변신을 시켰다. 냉장고에 있던 우스다 소스를 활용하여 탕수육 소스 비스무리하게 만든 탕수만두like로 바꾼 것이다. 맛을 보니 그럴듯했다. 그 며칠 전에는 둘째 녀석도 무언가 특이한 조리법을 탄생시켰는데, 아쉽게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둘째 녀석의 요리를 눈으로만 보고, 그 맛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에 없는 듯하다.

이 녀석들이 통상의 조리방법 또는 예시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시키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았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재료과학을 알기 쉽게 가르칠까를 고민하던 터에 나온 방법은, 재료과학을 실생활에서 느껴보게 하는 것이었다.

실생활과 대학 전공을 일대일로 대응시켜보는 함수(function)라는 머리 아픈 수학 개념을 동원해 설명을 해보자. 재료를 어떤 공정(Processing)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재료의 성질이나 특성이 확 바뀌게 됨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무언가 동일한 재료라 할지라도 특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면, 그 재료의 조직(structure)/미세조직(micro-structure)에 차이가 생겨났기 때문임을 이해하는 것도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미세조직을 바꾸고 특성(Property)을 바꾸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면 재료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강의실에서는 이를 Processing/Micro-structure/Propety의 이니셜을 따서, 한때 풍미했던 소니(Sony)의 PMP로 기억하게끔 했다.

이러한 재료과학의 PMP를 실생활에 대응시켜보도록 하자. 라면의 종류에 따라 형태와 색깔이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그 라면을 어떤 용기에, 어느 정도의 물을 넣고, 어떤 방법으로 끓여내고, 채반에 받쳐 후숙을 시키거나 찬물로 씻어주기에 따라 면발의 쫄깃한 식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분말스프를 찬물에 풀어서 할 것인지, 끓여진 물에 넣을 것인지에 따라서도 국물 맛의 차이가 발생한다. 극단적으로 다 끓여낸 다음 먹을 즈음에야 라면스프들을 넣는다면? 그 맛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요리하는 순서, 즉 공정 순서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시리라.

가끔은 이런 이야기를 아들들에게 해준 것 같다. 요리란 것은, 먹을 수 있는 ‘식(食)’재료를 가지고서 공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식(食)재료 과학’이라고.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하고, 요리솜씨가 남다른 마나님의 손맛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입맛이 길들여진 아들들의 감각들이 상호작용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세 녀석이 서로 다른 종류로, 분야로 식재료 과학을 체험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사이, 막내 녀석도 가끔은 그 흉내를 내는 것 같다.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다.

‘식(食)재료 과학’으로서의 요리를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체험한다면, 대학의 전공 강의실에서 배우는 딱딱하고도 어려운 재료과학 전공이 이해하기 쉬워질 것 같다. 이것을 학생들이 좀 더 빨리 체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 나가는 것이 필자의 임무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능력과 사고는 제한적이고 고지식하여 종종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마감이 촉박한 사항도 아니므로 기~인 호흡으로 차근차근 해 나가 보리라.

가끔은 뵙고 싶었던 그분이 오늘따라 생각이 난다. “임자, 해보기는 했어?”라고 되물어보시던 그분 말이다.

공영민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한국재료학회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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