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 ‘쥐 다리’를 밟자
2020년 새해, ‘쥐 다리’를 밟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2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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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주택에 살다보니 이따금 ‘쥐서방’과 눈을 맞출 때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살기 때문이다. 문단속을 하지 않으면 가끔씩 방에서도 만난다. 그때마다 서로가 놀란다.

어느 날 주인에게 들킨 쥐서방이 미안한지 안방 한구석에 쌓아둔 방석 뒤로 숨었다. 쫓아가 방석을 걷어냈다. 주인 몰래 한 살림 차린 지 오래인 것 같았다. 라면 부스러기에다 볍씨까지 흩어져 있었다. 그동안 주인이 미처 챙기지 못한 공간에서 신나게 깨춤께나 추었겠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서로가 불편할 것 같아서 기어이 쫓아내고 말았다. 쥐서방은 그날 밤 문틈을 갉기 시작하더니 그러기를 며칠이나 반복했다. 참다못한 주인은 이별을 결심했고, 그 후 한동안은 조용했다.

보름 전 창고를 정리할 때였다. 바닥에는 조각이 쌓여있고, 위에서는 조각이 함박눈 내리듯 했다. 한동안 조용히 지켜봤다. 좁은 틈새에서 뽁뽁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것은 스티로폼 조각이었다. 떠돌이 수컷 서생원(鼠生員)이 이곳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은 것 같았다.

쥐는 세력권을 오줌으로 표시하고 인식한다. 상대방 오줌의 흔적이 희미해졌거나 자기 오줌보다 냄새가 약하다 싶으면 그곳에 자신의 세력권을 형성한다. ‘스티로폼 예술가’인 떠돌이 서군(鼠君)이 그런 탐색을 거쳐 자신의 거처로 삼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과도 며칠 후엔 영영 이별을 고하고 만다. 일반주택에서 생활하자면 으레 있는 일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이 헛말이 아님을 확인했다.

쥐는 구멍에서 생활한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말에서도 짐작된다. 간혹 뱀의 화를 당하기도 하지만 구멍은 서생원들에게 윗대부터 전승·답습해온 안전지대다. ‘새는 새는 낭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잔다’에서 ‘궁게’는 ‘구멍에서’란 말이다.

쥐는 밤에 활동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에서 짐작할 수 있다. 또 쥐는 시끄러운 포유류다. ‘쥐 죽은 듯 조용하다’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늙은 쥐가 독 뚫는다’라는 속담에서는 쥐가 오래 살면서 노숙(老熟)해짐을 알 수 있다.

쥐는 작은 것, 시끄러워 성가신 존재, 비속어(卑俗語=격이 낮고 속된 말씨)에도 단골로 등장하고, 그만큼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사례를 들어보자. ‘쥐O끼 같은 놈’, ‘쥐방울만한 녀석’, ‘쥐꼬리만한 월급’, ‘쥐구멍에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 ‘독안에 든 쥐’, ‘물에 빠진 생쥐’,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겠다(=하찮은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 등등 수없이 많다. 비유경(比喩經)에 등장하는 흰 쥐와 검은 쥐는 각각 낮과 밤을 비유한다.

서생원들의 애로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쥐가 우리나라에서 박멸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1970년~1990년대에는 사람의 먹이경쟁의 당사자로 간주돼 달마다 곤욕을 치러야 했다.

쥐는 황조롱이, 뱀, 족제비, 여우 등의 먹잇감이다. 그 때문에 야행성으로 진화해 좁고 긴 구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올빼미, 부엉이는 오빠부대가 되어 그들을 밤마다 쫓아다닌다. 그래서 그들은 막강한 번식력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사람의 생활주변을 떠나지 않는 것도 생존전략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의식주와 목숨까지 어느 정도는 보호할 수 있는 탓이다.

쥐의 임신주기는 21일이며, 한 배에 열 마리까지 낳는다. 1년에 최대 열 번까지 출산이 가능하다. 과거에 천장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니던 짓은 번식을 위해 사랑을 쫓는 행동태였다. 생태계에서 임신주기나 산란주기가 빠른 것은 그 동물이 먹이사슬에서 생산자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쥐는 1차 소비자의 먹이대상 무리에 속한다. 크기가 작은 설치류 중 멧밭쥐나 밭쥐는 태어나서 5~7주 안에 번식할 수 있다. 이처럼 높은 출산력은 낮은 생존율을 보상받기 위한 생존전략을 터득한 결과물이다.

‘이빨로 갉는다’고 해서 쥐를 설치류(齧齒類)라 부른다. 쥐는 나서 죽을 때까지 앞니가 계속 자라기 때문에 나무 같은 것을 갉아서 이빨을 닳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니가 계속 자라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목숨을 잃게 된다.

2020년 새해 경자년(庚子年)은 쥐띠의 해다. 우리 민속에서 쥐는 다산(多産)과 풍요(豊饒), 십이지의 첫 자리, 영민함과 근면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그러한 쥐의 속성은 생존전략과 맞닿아 있다. 늙은 쥐가 어린 쥐보다 수염이 길고 풍성한 것도 같은 시간대에 넓은 공간을 인식해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뱃사람들은 쥐를 예지력 있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쥐는 배 안에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세력다툼에서 패하면 살기 위해 탈출을 택하는 습성이 있다.

사람의 인생(人生)이나 쥐의 서생(鼠生)이나 이승에서의 삶이 눈물겨운 것은 마찬가지다. 실천적 노력만이 웃음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필자는 경험했다. 울산에는 1924년생 쥐띠, 갑자교(甲子橋)가 있다. ‘구 삼호교’를 일컫는 말다. ‘다리 밟기’는 예로부터 힐링의 수단이며 체육학·인문학이 함께한다. 새해에 ‘삼호다리 밟기’를 적극 권하는 이유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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