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의 날개와 학우(鶴羽), 그리고 ‘울산학춤’
크레인의 날개와 학우(鶴羽), 그리고 ‘울산학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1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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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립무용단 제41회 정기공연 ‘울산아리아-크레인의 날개’가 지난 6일(금) 오후 8시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연출자는 ‘크레인의 날개’를 노동자의 희망 메시지로 상징했다. ‘크레인의 날개’에서 크레인(crane)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두루미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현장에서 무게와 부피가 큰 자재를 옮기는 기중기를 의미한다.

이번 공연의 테마 크레인은 순우리말 ‘두루미’ 혹은 한자어 ‘학(鶴)’을 의미하고 있었다. 두루미와 운반기는 둘 다 목이 길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른다. 크레인과 학의 이미지인 크레인은 울음소리와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 크레인은 ‘크락∼크락∼’이란 소리가 바탕이고, 한자어 학은 ‘꽁지가 짧은 새’라는 형상이 바탕이다. 하지만 두루미의 중심 특징은 큰 날개에 있다. 이런 연유로 두루미의 큰 날갯짓을 ‘너울너울’이라 표현한다. 소매가 넓고 긴 승려의 법복 장삼(長衫)의 활갯짓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2013년 11월 14∼15일(목·금)에 열린 울산시립무용단의 제32회 정기공연의 명칭은 ‘흑백 깃의 사랑이여!’였다. 흑백 깃의 소재는 까마귀와 백로였다. 매년 겨울철과 여름철에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와 백로의 깃을 흑백의 색깔로 대비시켰던 것이다.

울산시립무용단 제35회 정기공연 ‘내·춤·빛’(원제: 흑백 깃의 사랑이여!)은 2015년 4월 3일(금) 오후 8시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졌다. 당시 두루미의 고장 학성(鶴城)에서 두루미는 젖혀두고 떼까마귀와 백로를 모델로 삼은 공연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만인 2019년 12월, 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두루미를 테마로 삼은 시립무용단의 공연은 그동안 아쉬웠던 마음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아쉬움을 남겼다. ‘크레인의 날개’를 노동자들의 희망 메시지로 상징하기보다 울산의 터줏대감이었던 두루미와 문전(門前)이었던 백로, 배반(胚盤)인 떼까마귀를 내세워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의 당위성을 부각시키고 예술로 승화시켰다면 독창성이 더 한층 돋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아무튼 울산의 진객 철새들이 무용의 소재가 되어 울산을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게 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하다. 이번 공연에서 느낀 점은, 이제 무용공연문화도 때를 알고 변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지시식변(知時識變)과 때를 따르며 변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수시변역(隨時變易)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시그널이었다. 이번 시립무용단 공연은, 옥에 티도 없지 않았지만, 두루미를 테마로 삼아 시대성과 시의성에 접근하려 애썼다는 점에서 대체로 돋보인 수작이라고 하겠다.

지난 12일(목) 오후 7시30분에는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2019년 울산학춤보존회 정기공연’이 있었다. ‘크레인의 날개’와 ‘울산학춤’의 공연은 흥미롭게도 같은 달인 12월, 우리 말 ‘두루미’가 바탕을 이루었다. 울산학춤에서 학춤은 ‘두루미 춤’을 가리킨다. 크레인의 날갯짓이 울산학춤인 것이다.

울산학춤이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에 탄력을 받아 조류생태관광을 진흥하고자 하는 시·군·구의 노력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현실에서 떼까마귀와 백로의 날갯짓은 하늘에서, 물가에서 사계절 볼 수 있으나 두루미, 크레인, 학의 날갯짓은 ‘울산학춤’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울산학춤은 함께하는 것이고 더불어 하는 것이다. 이를 ‘태화’라 부르고 ‘글로벌 하모니’라 표현한다. 두루미의 날갯짓은 안정적이고 우아하며 모든 것을 감싸 안기. 때문이다.

시에 등장하는 말에 ‘편편(翩翩)’이 있다. 이는 새가 나는 모습을 의미한다. 비록 날개가 커서 높이, 오래, 멀리까지 날아가는 새라 할지라도 이 표현이 모든 새의 날갯짓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직 학의 날갯짓에만 쓴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두루미의 날갯짓이 안정적 학가(鶴駕)이기 때문이다. 망자의 가슴에 큰 새의 깃인 대조우(大鳥羽)를 품게 하는 장례민속 속의 새가 학인 점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크레인의 날개와 학우(鶴羽) 그리고 ‘울산학춤’의 공통점은 학의 날갯짓에 바탕을 둔의 너울춤이다. 울산학춤은 1997년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1천300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 기록을 일지에 남겼다. 두루미의 날갯짓에는 희망, 에너지, 날아오르는 비상(飛上), 날아다니는 비상(飛翔), 긍정, 평화, 깨침, 먼 곳을 바라보는 조망(眺望),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부감(俯瞰) 등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두루미는 속되지 않은 선비를 상징한다. 때문에 두루미는 반드시 대숲을 배경으로 한 양학(養鶴)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나무는 학과 더불어 속(俗)이 아닌 성(聖)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속된다(無竹令人俗).” 이 말의 주인공 소동파는 어잠승녹균헌(於潛僧綠筠軒)에서 죽(竹)을 예찬한다. 야운 비구는 “두루미는 까마귀와 벗하지 아니하며(鶴無烏朋之計)”라거나 “두루미와 푸른 구름을 반려자로 삼아(野鶴靑雲爲伴侶)”라고 했다. 소동파와 야운 스님은 일찍이 대나무와 학을 통해 속됨을 경계하고 수행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있는 열채 같은 샛강을 찾을 때마다 어린 새끼를 데리고 편편하게 날갯짓하는 두루미가 필자의 눈에는 이따금 신기루로 나타난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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